전원일기 1,000회 맞는다
80년 첫 방영‥내달 4일 유례없는 대기록
"순영아, 빨리 와, 뭐 해"
"할머니, 할머니 안 오셨네. 들어오시려면 좀 기다려야 해요."
드라마 전원일기의 1,000회분 촬영날. 촬영을 앞둔 MBC 전원일기 팀이 김회장댁 앞마당에 모여 기념촬영에 한창이다.
서로의 이름보다는 극중 배역을 부르는 게 익숙한 이들의 모습을 보면 1,000회 역사란 역시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보다.
999회와 1,000회분을 함께 찍는 이날. 기념 촬영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스탠바이 싸인이 나자 일순간 바뀐다.
첫 촬영장소는 병태(윤준환 분)의 방. 음식을 먹는 흉내를 내던 병태의 손이 돌연 빨라진다. 단 한번의 엔지도 없이 한 씬이 지나갔지만 크게 울어야 하는 아이가 울지 않아 다음 씬에선 좀 애를 먹는 모양이다.
같은시간. 김회장 댁 안방에선 별 준비가 필요 없을 듯 한 김회장 부부와 할머니가 대본 연습에 여념이 없다.
금동이의 초등학교 졸업사진과 며느리의 효부상 표창장까지 그대로 걸린 안방은 예상과는 달리 앞마당세트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불꺼진 스튜디오 반대편으로 돌아가 고참 배우들이 연습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자니 "선배님들이 이끄는대로 따라만가도 되요"라고 말하던 후배 연기자들의 말이 새삼 머리속을 맴돈다.
드라마 전원일기가 오는 3월4일, 1,000회 방송을 맞는다. 지난 80년 10월21일 첫 방송을 시작, 20년 넘게 방송되고 있다니 세계 어디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그간 연출가와 작가는 수도 없이 바뀌었지만 출연진들의 면면엔 변화가 없다. 장수드라마에 출연해선가 출연진들 모두 별다른 사고없이 무사한 셈이다.
1,000회를 맞는 이들의 감회는 굉장히 남달라 보였다. 하지만 늘 고정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업이 연기자로서 마냥 뿌듯하기만 할까.
탤런트 김혜자씨는 "다른 역을 아무리 잘 해도 1년 뒤면 도로 어머니 이미지라 솔직히 힘들지요. 그만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의무감이랄까. 그냥.생활 같은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가 하나의 생활이 된 건 비단 연기자들만은 아닌 듯 하다. 시청자들 역시 전원일기를 드라마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평상의 삶으로 읽어내는 걸 보면 말이다.
일용엄마로 출연중인 김수미씨도 "농촌 할아버지들한테 남은 여생을 함께 보내자는 편지가 요새도 자주 온다"며 웃는다.
요즈음은 농촌의 아픈 속내보다 가족 4대의 화목과 따뜻한 농촌 풍경을 보여주는 촬영분이 더 인기라는게 제작진들의 귀뜸.
어쩌면 이 드라마를 통해 출연진도 시청자도 우리 모두가 떠나온 곳, 마음속 고향의 모습을 추억하는 듯 했다. "삽하나 들고 왔다갔다 해고 끝이어도 이 드라마여서 괜찮다"던 유인촌씨 말도 그래 더욱 이해가 갔다.
하지만 1,000회 방송을 앞두고도 방송사는 그 흔한 특집 방송하나 편성치 않을 듯 하다.
"글쎄요.뭐 돈이 안되기 때문이겠죠."재작년 전원일기 팀에 복귀, 500회 촬영에 이어 1,000회 분까지 감독하게 된 권이상PD 역시 이점이 못 내 서운해 보였다.
김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