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건 예금자 과세 방침을 일부 철회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단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주도한 독일이 예금자 과세에 대해 완전철회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데다 구제금융안이 키프로스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여파는 스페인ㆍ포르투갈 등 다른 재정위기국으로 또다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은 한밤 긴급 전화회의에서 키프로스 은행권의 소액예금에 대한 과세를 철회하고 10만유로 이상의 고액예금에만 15.6%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유로존이 구제금융의 대가로 예금자 과세라는 이례적인 조치를 제시했다가 급하게 철회한 것은 안팎으로 비난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대통령도 "상식이 결여된 매우 위험스러운 조치"라고 강하게 비난했고 독일 편에 서서 안을 만들었던 오스트리아 재무장관도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급기야 미국까지 나서 1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공정하고 책임 있는 해결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유로존 지도부를 압박했다. 당초 16일 키프로스 정부는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10만유로 이상의 예금에 9.9%, 그 이하에는 6.75%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해 금융시장의 불안을 몰고 왔다.
이처럼 유로존이 은행예금에 대한 과세 조치를 일부 철회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18일 2.7% 급락했던 일본증시는 19일 2%가량 상승했고 홍콩ㆍ상하이 등 기타 아시아증시 역시 반등했다. '안전자산' 선호 속에 전일 급등했던 미국 및 일본 국채 가격도 내림세로 돌아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9일 10년물 미국채 수익률과 일본국채 수익률은 각각 0.01%포인트 오르며 1.967%와 0.595%를 보였다.
하지만 은행권의 손실에 대해 주주나 투자자가 아니라 예금에 부담을 지운다는 '예금자 과세방안'이 현실화되면서 불안은 여전한 실정이다. 자칫 키프로스는 물론 스페인ㆍ포르투갈 등 다른 은행 부실국가로 뱅크론이 확산되면서 유로존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이터는 "예금자에게 은행 부실의 부담을 전가하는 조치가 현실화된 만큼 독일이 이 같은 방식의 구제금융을 고집할 가능성은 여전하다"며 "유럽권에 자금을 묻어뒀다면 빼는 게 좋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전했다. FT도 "EU와 IMF가 동의한 이번 조치가 예외적 수단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게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에서 다시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생각 이상의 동요가 유발될 수 있다"는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상의 발언을 보도했다.
또 과세부담이 키프로스에 200억달러를 예치한 러시아 같은 비유럽권 국가에 돌아간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뉴욕타임스(NYT)도 "유럽 정부 때문에 빚어진 손실을 '유럽권 밖' 투자자에게 강요하는 시도는 매우 폭력적"이라며 "구제금융이 이 같은 형태로 진행될 경우 위기를 부추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키프로스 의회가 이 같은 구제금융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키프로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는 "키프로스는 '자산도피처'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10만유로 이상에 대해서도 세금이 부과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과반 이상의 다수당이 없고 3당 모두 정부 조치에 아직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전했다. 키프로스 예금의 3분의2는 해외에서 온 것으로 은행예금은 이 나라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로이터는 "시내 곳곳에 설치된 현금인출기의 돈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며 "곳곳에서 시위대가 '유로존 탈퇴''메르켈은 집으로나 가라' 등의 구호가 나붙은 시위가 촉발되고 있다"고 전했다. 파니코 데메트리아데스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는 "만일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