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파워 시프트] <1부> ③ 넓어진 중간지대의 결정은

무너지는 보수·진보의 벽… 이념보다 삶의 질에 눈돌린다<br>사안별 보수·진보 넘나드는 정치적 유목민 크게 늘어나<br>복지정책 확대·부자증세 등 여야 정책 큰틀도 비슷해져<br>"보수·진보구분 아직은 유효" 선거땐 양자대결 가능성 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은 한국 정치의 전통인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흔들었다. 안 원장의 태생이나 성장과정은 누가 봐도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여기다 그의 경제적 인식은 분배 정의보다 시장의 공정성이다. 오히려 시장주의자로서 대기업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어떤 면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렇다고 시민들은 안 원장을 보수로 보지 않는다. 시민들은 보수ㆍ진보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 인기 키워드인 '강남좌파'라는 말처럼 굳이 선을 긋지 않는다. 그냥 그의 말과 행동의 합리성과 헌신성에 열광한다.


지난해 10ㆍ26 재보궐선거에서 시작된 안철수 바람은 이명박 정부 내내 이어지던 박근혜 대세론을 가라앉혔고 정당의 위기론을 부채질했다. 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재창당 수준의 쇄신 주장까지 나오면서 뿌리에서부터 흔들렸다. 또 제1야당은 시민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지면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안철수 신드롬이 흔들고 간 것은 기존 정당 내부 질서만이 아니다. 정당의 정치적 성향을 규정하는 보수와 진보의 성향도 흔들어놓았다.

시사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보수와 진보 사이 유목민층이 증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어떤 사안은 진보가 맞다, 어떤 사안은 보수가 맞다고 하는, 둘 사이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골수 지지층이 무너지는 대신 그만큼 중간지대가 넓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너지는 보수ㆍ진보의 경계=제3지대의 등장은 대립점을 고집하던 여야의 정책이 비슷해지는 현상을 나타나게 했다. 삶의 질 확보라는 공통점에서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다.

이 박사는 "정책적으로 보면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더 복지를 말하고 있고 이른바 정책 쇄신이라는 내용을 보면 민주통합당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유권자들에게 이념적으로 구분하던 지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올해 두 번의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밝히는 복지정책은 민주당보다 더 포퓰리즘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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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분배와 성장 논란으로 대립하던 복지논쟁도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방법론적 차이를 나타낼 뿐 복지정책 확대라는 큰 틀에서는 차이가 없다. 민주당 등 야권은 무상급식ㆍ무상보육ㆍ무상의료와 반값등록금을 합친 '3+1' 보편적 복지 안으로 지난해 복지논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이에 뒤질세라 대학등록금 완화 방안을 내놓고 만 5세 이하 아동에게 무상보육을 추진하겠다고 밝힌다.

반대로 부유세의 일종인 이른바 '버핏세' 도입은 보수정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감세기조를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은 야당이 줄기차게 한 것이나 정작 힘을 얻은 시점은 한나라당 내부 쇄신파 의원들이 버핏세를 언급한 때부터였다. 결국 야당에서 주장하던 것보다 상당히 후퇴한 수준에서 소득세법 개정안은 통과됐다.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한나라당이 비난공세를 펴기 앞서 민주당 내 관료 출신 의원들이 먼저 재정건전성 문제를 지적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보편적 복지'를 당 강령에 집어넣으면서 진보색채를 강화하려던 민주당 내부에서 보수적 가치인 재정건전성을 먼저 들고나온 것이다. 재정건전화론자들은 정책노선을 강화하려면 논리를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민주당의 복지 드라이브를 다소 감속시켰다.

◇흑백논리 같은 보수ㆍ진보 구분은 여전히 유효=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지만 올해 선거도 우리 정치현실로 보면 양자 대결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또 실체적인 내용과 달리 한쪽에서는 진보라는 색채를, 한쪽에서는 보수라는 색깔로 포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한국 사회 내에서 보수와 진보는 내용과 달리 피아를 구분하는 흑백논리와 같은 것이다.

그 때문에 보수와 진보라는 오래된 구분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지적이 양측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장은 저서 '진보세대가 지배한다'에서 "막연히 자신의 주관적 이념 성향을 선택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중도를 택하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며 "반면 (성장과 분배, 대북정책에서 대화와 압박 등)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물어보면 대체로 진보 아니면 보수의 답으로 양분되고 중도층의 비율은 확연히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통하는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부터 오늘날의 사회문화 현상을 보는 시각에 이르는 많은 분야에서 나타난다"고 밝혔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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