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대한 부동산 시장의 기대감이 큽니다" "너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섣불리 시장 활성화 대책을 내놓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뭔가 (활성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데요" "정치적으로 부담이 커요. 거래 활성화도 필요하지만 집값이 뛰는 것을 반기는 정치인은 없을 겁니다."
기자가 지난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담당하면서 당시 한 인수위 전문위원과 사석에서 나눴던 대화다. 당시 그 전문위원은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의 방점은 '시장 활성화'가 아닌 '안정'에 찍혀 있다고 귀띔했다.
새 정부 출범 후 2개월여만인 그 해 4월23일 미분양해소대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기자는 '당신이 틀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일시적 2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고 취ㆍ등록세 감면 등을 담은 6ㆍ11대책, 지방 2주택자 양도세 중과배제 대상을 확대한 8ㆍ21 대책이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MB 정부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지금, 기자는 그 전문위원의 말이 맞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지난 4년을 되돌이켜 보자. 참여정부 당시 만들어 놓았던 부동산 시장의 정책적 규제 중 웬만한 것들은 다 풀렸다. 지난해 말에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강남3구에 대한 규제 빗장도 열렸다. 강남3구를 전매제한과 재당첨을 금지한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한 것이다. 국회에서 수년째 낮잠을 자고 있는 분양가상한제 역시 지난해 12ㆍ7 대책을 통해 사실상 무력화됐다.
규제 빗장 풀어도 침체의 골 깊어져
그런데 시장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거래는 오히려 더욱 꽁꽁 얼어붙고 있고 집값 하락세는 멈출 줄 모른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정부의 12ㆍ7 대책 이후인 지난 1월 아파트 거래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초보다 더 위축됐다. 오죽하면 정부가 수도권 아파트 거래를 15% 늘리겠다는 정책 목표까지 제시했을까 싶다. 어느새 정부 정책의 방점도 '시장 안정'보다 '거래 활성화'로 옮겨갈 정도로 침체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풀 것 다 풀었음에도 시장이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이유는 뭘까. 경기 침체와 가계부채 급증, 주택 구매욕구 감소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잡한 정치공학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시기를 놓친 것도 중요한 원인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지난 4년간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대책의 행간(行間)에서 예외 없이 드러난 것은 '주저함'이었다. 풀기는 풀되 그때마다 시장의 요구에는 훨씬 못 미칠 만큼 시원하지 못했다. 매번 대책 수립 과정에서 혹시 모를 집값 상승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자칫 규제를 풀었다가 집값이 뛰면 큰일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규제를 풀되 소극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때'를 놓쳐도 한참 놓쳐 버렸다. 여야를 막론하고 집값이 오르면 표 떨어진다는 정치적 계산이 정책 결정에 개입한 결과다.
최근 마지막 금기로 여겨졌던 강남권 총부채상환비율(DTI) 해제 추진 논의가 정부 안팎에서 이뤄지는 분위기다. DTI를 해제에 따른 집값 상승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거래 침체를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들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만났던 한 대형 건설사 사장은 "지금은 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때"라고 말할 정도다.
정치권 이해관계에 때 놓치지 말아야
그런데 DTI 해제 역시 또다시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면서 때를 놓칠 조짐이 엿보인다. "강남권 DTI를 해제하면 자칫 '부자 정당'으로 낙인돼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여당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반대 이유다.
DTI 해제라는 이슈에 일단 정치권이 개입한 만큼 꽤나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말이 많아지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민간 분양가상한제 폐지 법안이 2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더더욱 총선이 코앞이다. 총선이 끝나면 대선이라는 더 큰 정치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자칫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얽혀 DTI 해제 여부에 대한 정책 결정조차 때를 놓치게 될까 걱정이다. 도와달라고 안 할테니 괜한 간섭이나 하지 말라 달라고 말하고 싶은 게 요즘 부동산 시장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