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석학칼럼] 유럽 배회하는 '긴축' 망령

긴축했지만 실업률·성장 제자리

佛 투자후퇴 주범 수요감소인데 정부지출 줄이고 법인세 낮춰

이론보다 현실 고치는 우 범해



"만약 주어진 정보가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론을 바꾸라"라는 말은 오래된 격언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론을 고집하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는 게 더 쉽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긴축정책을 지지하는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그렇게 믿는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정보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도 그들은 지속적으로 진실을 외면한다.

긴축정책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 정책을 방어하려는 사람들은 미약한 근거를 가지고 '승리'를 주장한다. 경제는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있으며 긴축정책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산에서 내려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어쨌든 하강은 멈출 테니까.


모든 침체에는 끝이 있다.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려면 궁극적으로 경기회복 사실을 볼 게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회복됐고 불황에 따른 타격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긴축정책은 유럽 경제를 스태그네이션(장기 경기침체), 또는 트리플딥(경기가 회복과 침체를 반복하는 현상)으로 끌어들인 게 확실하다는 점에서 완벽한 재앙이다. 기록적으로 높은 실업률이 이어지면서 많은 나라의 1인당 실질 국민총생산(GDP)은 침체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독일 같은 가장 튼튼한 경제권에서조차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성장은 어느 때보다 부진하다.


여전히 많은 국가가 디프레션(depression)에 처해 있다. 인구 4명 중 1명, 그리고 청년층의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의 경제상황을 다른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실업률이 고작 2~3%포인트 떨어지거나 어렴풋이 성장할 기미를 보인다고 정책의 약발이 먹혔다고 하는 것은 중세 유럽의 이발사가 환자의 피를 뽑는 치료를 하고 죽지 않았으니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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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유럽의 평균 성장세를 적용했을 때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현재 유로존의 총생산은 지금보다 15% 더 늘어났어야 한다. 이는 올 한해만도 1조5,000억달러, 금융위기 이후 누적으로는 6조5,000억달러의 생산이 정상적인 수준보다 적었음을 의미한다. 침체기 이후 뒤따르는 성장은 일반적으로 그간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더 빠르게 이뤄진다. 하지만 현재는 정상적인 성장과 비교한 생산 갭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런데도 독일은 다른 국가들에 경제와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채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시민들은 정책을 바꾸기 위해 반복적으로 투표를 하지만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 다른 곳에서 결정되거나 시민들에게 선택권이 없을 때 유럽의 민주주의와 신뢰는 타격을 받게 된다.

프랑스 국민들은 3년 전 정책을 전환하는 쪽에 투표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또 다른 친기업 긴축정책을 맞이했다. 균형재정승수는 경제학에서 매우 오래된 전제 가운데 하나다. 이의 요지는 세금을 더 걷어 정부 지출을 늘리면 경제활동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걷고 저소득층에 대한 지출을 늘리면 승수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른바 '사회주의 정부'는 법인세율을 낮추고 정부 지출을 줄이는 처방을 했다. 이 처방은 프랑스 경제체질을 약화시킬 것이 뻔하지만 독일로부터는 찬사를 받았다.

기업 감세는 투자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는 난센스다. 미국과 유럽에서 투자를 후퇴시킨 주범은 수요감소이지 높은 세금이 아니다. 대부분의 투자자금을 빚으로 조달하고 이자 지급액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 법인세 수준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이탈리아는 민영화를 추진하라는 독려를 받고 있다. 하지만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국가의 자산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유로화로 야기된 유럽의 고통은 사실상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긴축정책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함에도 독일과 다른 강경파는 믿을 수 없는 이론에 유럽의 미래를 거는 데 더욱 전념하고 있다. 이는 경제학자들에게 긴축정책이 경제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증거를 추가해줄 뿐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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