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유연화와 참여 협력의 노사관계」.「국민의 정부」의 노동시장정책을 축약한 표현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출발한 DJ정부의 최대과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과거 권위주의 체제로 사회전반에 누적된 병폐를 청산하기 위한 총체적인 개혁이었다.
개혁은 사회 각 주체에 대한 고통분담요구로 이어졌다. 기업에게는 그동안의 방만한 경영과 불투명한 관행의 청산을 주문했다. 특히 고용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감소한 근로자계층에게는 참기 힘든 고통을 요구했다.
신정부의 노동시장정책은 정리해고 등을 통해 경직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고통분담을 통해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전에 이미 사회적 협의기구로 노사정위원회를 탄생시켰고 정리해고 실시와 정당한 노동권보장이라는 노·사·정 3주체간의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또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40여일간의 파업사태가 벌어진 현대자동차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대립→갈등→파업→공권력투입→대량구속이라는 악순환 틀을 깨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립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노동계 관계자는 『대규모 사업장에서 정리해고를 수용했다는 아픔은 있지만 섣불리 힘에 의존하지 않고 설득과 타협으로 진행된 문제해결 방식은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신정부가 1년동안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노사충돌로 대변되는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갈등최소화를 넘어 21세기 재도약을 위한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는 아직 구호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연초부터 노·정대립 양상이 증폭되고 있어 위기상황속에서 갈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연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정부에 대해 구조조정 중단을 포함한 노동시장정책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정부의 원칙없는 노동시장정책이 기업회생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모두가 시각은 다르지만 노동시장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말부터 노사정위가 비틀거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계에서 합의사항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노사정위를 통해서는 자신들의 핵심적인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겉으로는 드러내놓지는 못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정책입안자들은 노사정위를 「구조조정의 걸림돌」쯤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정부투쟁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민주노총 허영구(許榮九)부위원장은 『정부여당에서 노사정위에 너무 연연해 하고 있다』며 『노사정위가 아니더라도 대화채널은 열려 있다. 민노총은 고용조정을 실시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실업자를 실업대책으로 흡수한다는 정부의 기존 노동시장 정책의 틀을 실업을 발생시키지 않는 쪽으로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영계에서는 정부 여당이 노동계 끌어안기에 골몰해 원칙없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경총 이동응(李東應)부장은 『정부가 겉으로 나타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동계에 끌려다니고 있으며 결국 이러한 부담은 경제전반에 걸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가 회복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노·사, 노·정 대립 또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신정부의 노동시장정책이 바야흐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이학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