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마무리이전에 5대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공기업 민영화에도 5대그룹은 참여할 수 없다?」정부가 LG그룹의 대한생명 인수에 반대입장을 공식화하면서 5대 그룹이 올 연말까지 대규모 신규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지 애매해졌다.
그러나 하반기이후로 예정된 공기업 민영화과정에서 5대그룹을 배제하기 어려운게 현실이어서 「5대그룹의 신규사업 진출불가」원칙이 언제까지 지켜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이같은 정부의 방침이 내년 총선을 5대그룹의 팽창에 따른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 등은 최근 잇따라 『5대 그룹에 돈이 있다면 핵심사업 위주로 투자, 국제경쟁력을 높이거나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며 『새로운 사업에 나서서는 안된다』고 압박하고 있다. 각 그룹이 주채권은행과 맺은 부채비율 및 계열사 축소, 분사, 지배구조개편 등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철저히 이행한 뒤에 신규사업에 진출하는게 맞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관계자는 2일 『개별 기업이 자금에 여력이 있어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자유』라며 『그러나 지금은 각 그룹이 부채비율 200%를 맞추는게 우선이며 신규진출은 그 다음에 하는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말까지 5대 그룹 구조조정을 마무리한다는 정부의 의지에 재계가 화답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움직임과 달리 재계는 내심 적지않게 반발하고 있다. 5대그룹은 특히 현대의 기아 인수에 대해 『5대그룹 구조조정 원칙이 세워지기 전의 일』이라는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일관성없는 정책의 표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LG의 데이콤 인수에 대해서도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를 현대에 넘긴 반대급부」로 보는 정부측 시각에 대해 「신규사업 진출불가 원칙과 어긋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LG는 일단 대한생명 입찰 참여를 강행하기로 방침을 정해 정부 방침에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는 무엇보다도 이같은 정부의 입장과 공기업 민영화의 상관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한국중공업 민영화에 눈독을 들이고 있고 현실적으로 여력을 가진 기업은 다름아닌 현대, 삼성 등 5대 그룹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세(勢)확대의 호기로 삼으려는 5대 그룹에 대해 정부가 계속 「신규사업 진출불가」원칙을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5대그룹을 배제한채 이들 대형 공기업의 정상적인 민영화가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의문이다.
이코노미스트그룹의 경영자문회사인 EABC 안토니 미셸사장은 이날 『구조조정 과정은 자율 시장경제의 원칙하에 이뤄지는게 중요하다』며 『기업들이 재무·사업 분야 등 구체적인 구조조정 대상을 자체적으로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일이 경제 위기 극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부채비율 200%목표를 달성하는데 무리가 없고 현금흐름도 좋다면 신규사업에 진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자율의지를 강조했다.
/손동영 기자SON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