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런던 금융맨 그만두고 아프리카·유럽·아시아 등 누비며
나라별 발전 모습 직접 지켜봐
역외상품 '시카브' 한국 첫 도입… 亞 금융허브 자문 역할에 앞장
한국인 단기·몰빵투자 습관 위험… 생애주기 맞춘 분산투자 바람직
나도 다른 자산설계사에 돈 맡겨
"저의 투자 철학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시작된 떠돌이 생활에서 비롯됐습니다.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죠."
마이클 리드(사진)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법인 대표는 "자신의 운용 철학은 어렸을 적부터 세계 각국을 둘러본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리드 대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인 런던 금융맨 생활을 집어치우고 아프리카로 떠날 만큼 여행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부터 외국을 다니다 보니 모국인 영국에만 있으면 오히려 따분하게 느껴졌다. 아프리카·아시아·유럽·오세아니아를 누비며 세계 곳곳의 발전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기억은 지금도 해외투자를 강조하는 그의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십년 전 그가 만났던 나라마다 발전 과정이 천차만별이었고 각국의 주력산업도 달랐다. 그는 유망한 투자자산이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해외투자는 특히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놓쳐서는 안 될 영역이다.
리드 대표가 국내에 시카브(SICAV·국내 법이 아닌 유럽의 공모펀드 투자기준(유싯·UCITS)을 따르는 역외 펀드) 펀드를 최초로 소개한 것은 지난 1997년이다. 그가 한국을 처음 찾았던 19년 전만 해도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투자를 꺼리던 때였다. 홍콩에서 프랭클린템플턴이라는 투자신탁회사에서 일한 지 6개월 만에 프랭클린템플턴이 한국에서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한국을 찾았다. 1995년이었다.
약 2년간 준비해 1997년 새해 첫날 한국에 문을 연 회사가 쌍용템플턴이었다. 한국과 외국의 합작 운용사로는 최초였다. 그때만 해도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투자에 익숙하지 않았다. 쌍용템플턴은 룩셈부르크에 등록된 역외 상품인 시카브 펀드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와 쌍용증권을 통해 판매했다. 리드 대표가 시카브 펀드를 국내에 들여온 덕분에 지금은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같은 국내 대형운용사들이 국내 펀드를 해외시장에 설정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1990년대는 투자자들은 물론 금융 당국마저도 시카브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때입니다. 제가 직접 당국 관계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설득했고 마침내 승인을 얻어냈습니다. 첫 판매를 시작했을 때가 1997년 4월이었죠."
리드 대표가 국내에 해외 상품을 소개하고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은 19년째 이어지고 있다. 리드 대표는 19년간 한국 자산운용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주한 영국상공회의소(BCCK)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리드 대표는 한국이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발전하기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외국인투자자문회의에도 정기적으로 참석해 박원순 시장에게 외국인들의 투자를 유치할 방법을 자문해준다. 최근에는 서울을 위안화 거래의 허브로 만드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서울시·정부기관·금융당국이 적극 나서서 외국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한국이 외국인들이 투자하기 좋은 시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며 포부를 내비쳤다.
피델리티운용은 올해 한국 진출 10주년을 맞아 국내 시장에 유럽 배당 인컴(income) 펀드, 글로벌 멀티에셋 인컴 펀드 등 다양한 해외 상품을 출시했다. 리드 대표가 시카브 펀드를 국내에 들여오며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상품에 친숙해지는 데 앞장서왔지만 분산투자하는 습관이 한국에 정착되지는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컴 솔루션을 설파하는 데 주력했다. 인컴 솔루션이란 배당·이자와 같이 정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방법이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1%대까지 추락하면서 저금리 시대가 장기화하자 고위험·고수익 투자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 전략이 중요하다.
"2006~2007년쯤 투자자들이 점점 해외투자에 관심을 갖더군요. 그런데 그 때 '누구는 해외펀드에 투자해서 떼돈을 벌었다더라'라는 소문이 돌면서 한국 투자자들이 고위험 펀드에 대규모 자금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러시아·중국·인도 등 소위 브릭스(BRICs)로 불리는 신흥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였죠. 2007년은 이미 기준가가 크게 올라 있던 상태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고 신흥시장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수익률이 -60%까지도 고꾸라졌어요."
리드 대표는 국내 투자자들이 글로벌 증시 고점에서 펀드에 투자했다 손실을 입는 모습을 보고 올바른 투자 습관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단기 시각에서, 인기 상품 하나에 몰아서 투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국이 대세라고 하면 중국 펀드로, 인도가 잘 나가면 인도 펀드로 뭉칫돈을 투자합니다. 투자 자금의 30~35%를 해외자산에 투자하되 주식·채권·유동화자산 등에 적절하게 분산투자해야 합니다."
리드 대표는 투자자들이 생애주기에 따른 금융 설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혼→육아→은퇴를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 및 사용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재무 설계를 올바르게 해야만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언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에 따라 적합한 상품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2~3년 뒤 결혼자금에 쓰일 돈이라면 2년짜리 정기예금에 자산을 넣어두되 일부는 주식·펀드 등에 나눠서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중장기적으로 쓰일 돈이라면 사모펀드나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아주 멀리 내다본다면 임업펀드(15년간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룬 뒤 목재를 생산하면 수익을 얻는 구조)에도 투자할 수 있겠죠."
자산운용사의 수장인 리드 대표도 자산전문설계사의 조언을 구한다. 의사가 자기 진료를 할 수 없듯이 자신의 자산은 다른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6개월에 한 번씩 자산 설계 전문가를 만나 도움을 구합니다. 제가 놓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제3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리드 대표는 은퇴 이후에 사용할 자금을 일본 홋카이도의 부동산에 투자했다. 은퇴 후 집을 짓고 살 곳이다. 그의 꿈은 은퇴 후 오토바이를 타고 홋카이도의 설경을 만끽하는 것. 그는 평소 KTM 오토바이를 타고 강원도 풍경을 즐길 만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한국에서 그가 살고 있는 집도 아파트나 양옥이 아닌 한옥이다. 6번과 44번 국도, 민통선으로 향하는 길은 그가 자주 찾는 단골 코스다.
"백발을 날리며 홋카이도에서 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 후 무엇을 하며 살까'라는 고민을 하지 않아요. 퇴직하면 골프나 치면서 여생을 보내야겠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인생이 매우 지루할 겁니다. 자신이 은퇴한 후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해요."
리드 대표는 은퇴 이후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요즘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는 비즈니스 아이템 개발에 한창이다.
"오토바이만 타기에는 남은 인생이 아깝습니다. 무역업자로 변신해볼까 해요. 한국에는 좋은 아이템을 발굴하는 능력을 지닌 제조회사들이 참 많아요. 요즘 셀카봉이 인기인데 참 기발한 물건입니다. 홋카이도에 살면서 한국의 독특한 제조품을 외국에 소개하는 일도 해볼 작정이에요."
사진=권욱기자
● 마이클 리드 대표는 |
퇴직연금·펀드슈퍼마켓·중국서 새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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