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가 잘되게 하려면/김영대 한국은행 조사담당이사(시론)

최근의 불경기가 과거와 다른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같으면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는다고 여기 저기서 큰 목소리들이 수도 없이 터져나왔을 터이지만 지금은 재계든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그런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섣부른 경기부양보다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구조조정을 더 서둘러야 하고 경제주체들의 의식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듯하다.이런 분위기속에서 기업의 차입의존적 외형확대위주 경영, 가계의 과소비풍조, 근로계층의 무리한 임금인상 욕구등이 비판과 개선의 대상으로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금융기관의 주인의식 회복과 금융과 기업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이 시급하다는 것도 많이들 하는 얘기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줄이고 시장경제에 맡기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경제이야기를 웬만큼 한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막상 구체적 현실이나 자기 일로 닥치면 딴 목소리로 바뀐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아사태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우리 경제가 잘 되려면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 금융이 돈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 경영부실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게 해야한다는 주장등은 다 어디로 가고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왜 전에 하던 방식으로 하지않느냐는 복고조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다. 최근 경제계에서 내놓은 금리 5%인하 주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원리와 동떨어진 규제금리로 일부 우선부문에만 혜택을 몰아주던 개발연대의 단꿈을 버리지 못하고 인위적 금리인하를 요구한다는 것은 WTO와 OECD시대를 헤쳐가는 이 시대 경제인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와 같은 금리자유화시대에 있어서의 금리결정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먼저 자기 몫으로서 차입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부터 묵묵히 실행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근로자 계층도 남에게 하는 주장 다르고 자기에게 하는 주장이 다르다. 회사가 살려면 군살을 빼야한다고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정리해고제등 신근로제도는 반대하고 있고 더구나 자기 회사에 대해서는 오늘 내일 목숨이 위태로운 회사라도 그런 문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소비자도 다를 게 없다. 과소비를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듯 행동한다. 지속되는 불황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 씀씀이가 더욱 헤퍼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올해들어 해외여행수지 적자는 1∼8월중 22억3천만달러로 이미 작년 일년치(26억달러 적자)와 맞먹는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그래서 성급한 경기회복은 오히려 반갑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참다운 변화가 뿌리내리려면 어려움이 더 지속되어야 한다는 독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은 없을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사이 작으나마 변화의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음을 찾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보 삼미 진로 대농 기아사태에 이르기까지 기업측에도 금융측에도 무언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요즈음 은행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예전과는 조금은 달라보인다. 돈을 빌려주고도 덩치 큰 기업에 끌려다니기만 하던 은행이 이제 돈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다.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기업도 이제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일단은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옛날같이 덩치만 믿고 나가다가는 안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무언가 자구책을 강구해야겠다는 마음도 먹는 듯하다. 금융기관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신화도 이제는 믿기 어렵게 되어가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단편적이고 일과성의 것으로 그냥 지나가게 해서는 안된다. 여리게나마 돋아나고 있는 이 새싹들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컨대 기아사태등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모두들 생각이 많고 참견도 하고 간섭도 하고 싶겠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좀 자제하고 조용히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일을 지켜보는 자세가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된다. 정부로서도 딴 생각말고 부실한 기업(금융기관 포함)의 자구노력이나 퇴출, M&A 등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여건을 조성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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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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