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이 15일 단독 입수한 새누리당의 복지 공약은 실천만 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구호를 떠올릴 정도로 획기적이다. 4조8,000억원이 넘는 예산과 26개의 개별 정책은 영유아부터 아동과 청소년, 청장년과 노인까지 인간의 생애주기마다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청소년, 베이비붐(한국전쟁 직후 급격히 늘어난 세대) 세대 등 그동안 복지의 대상에서 멀었던 연령대와 비정규직 여성, 정신지체장애자, 학습지 교사, 의료 및 에너지 빈곤층 등 대상을 세분화한 점도 '맞춤형 복지'라는 새누리당의 구호와 일치한다. 새누리당은 2월 말까지 이 방안을 기초로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논의 과정에 몇 가지가 빠질 수 있지만 총선 이후 바로 대선이 기다리고 있어 추후 추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새누리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4조8,000억원의 예산은 지난해 중앙정부가 계획보다 더 거둬들인 국세 수입과 같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닌 주식가치의 절반(2010년 기준) 수준이다. 올해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전년에 비해 5조6,000억원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복지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높아진 현재 4조8,000억원의 예산규모가 크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러나 복지는 한 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 확대하는 원리이기 때문에 "20년 계속사업으로만 봐도 100조원 사업"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15일 18대 총선의 공약 완료율이 3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키지 않을 공약을 내놓는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예산 11배 늘리면서 '어떻게'는 빠졌다=무엇보다 청소년 수당과 같이 일단 도입하면 확대할 수밖에 없는 제도를 신설하겠다는 목소리는 높아도 기존 복지제도 가운데 실효성이 낮은 정책을 빼겠다는 말은 없다. 복지정책의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대책을 내놓은 책임감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 이유다. 재원조달 역시 국가 재정이 대부분인데다 일부 사업은 아예 재원마련 대책도 없다.
개별 사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영유아 가정양육 지원'은 어린이집을 이용하지 않는 모든 0~2세 영유아 가정에 교육비를 제외하고 월 20만원을 주는 내용이다. 오는 2014년부터 실행될 예정인데 올해(887억원)보다 무려 11배가 넘는 9,972억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예산을 편성한다는 내용뿐 재원조달 방안은 없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는 보육교사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은 예산 5,854억원에 대한 조달방안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지원금이 교사가 아닌 원장과 원감 등 감독자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을 둔 채 지원만 늘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쪽방과 고시촌ㆍ비닐하우스 거주자에게 월 6만9,000원씩 주거급여를 주는 공약은 '용돈' 수준인 주거급여가 얼마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적은 돈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다 보니 예산은 1,639억원이나 되지만 재원조달 방안은 없다. 의료시설과 멀리 떨어진 농어촌 및 공단 지역 주민 등 이른바 의료빈곤층에 주치의를 둬서 예방관리를 하겠다는 공약은 아예 예산 추계조차 없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월 10만원 지급(4,648억원) ▦노인일자리 취업보수 지급(3,056억원) ▦은퇴한 베이비부머 교육개발훈련비 1만5,000원 지급(170억원) ▦청년 사회적기업 창업지원(48억원) 등 일자리대책 역시 중앙정부에 예산을 떠넘겼다.
◇거짓 수급 막을 전달체계 해법 빠졌다=가진 사람이 눈속임으로 받고 가난한 사람은 못 받는 구멍 뚫린 복지는 전달체계부터 개혁하는 게 우선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무총리가 관장하는 '사회보장위원회'를 두는 법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복지에 대한 정보가 한 곳에 모이고 각 부처별로 엇비슷한 복지정책을 분별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 가운에 이와 관련한 예산은 단 15억원뿐이다. 내용 역시 우리동네 복지서비스 찾기 모바일 앱 구현 등 단순한 복지서비스 효율화에 머문다. 새누리당은 오히려 전달체계 개혁 항목에 지방정부 소관 사업을 중앙정부로 돌리거나 늘어난 복지사업을 보조할 지방정부를 위해 1조원의 지방교부금 지원을 넣었다. 그나마 1조원 지방교부금은 신설항목이 아니라 기존 교부금을 '돌려 막기' 하는 셈이어서 지방정부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에서 복지재정에 관여했던 한 전문가는 "복지 선진국은 복지확대를 위해서는 줄이거나 늘이는 재원확보부터 시작한다"며 "우리는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민주통합당까지 미래 권력들이 '퍼주기'만 하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