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울리는 목소리의 힘, 그게 창극의 매력이죠."
한일 양국을 오가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은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사진)이 한국 전통 장르인 창극 연출에 도전장을 냈다. 오는 21일부터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통해서다.
정 연출은 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강렬한 힘을 내뿜는 배우와 그들의 목소리야말로 이 작품, 그리고 창극이 지닌 최고의 매력"이라고 극찬했다.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서사극의 창시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전쟁통에 아이를 버린 영주 부인과 그 아이를 구해 기른 하녀의 양육권 다툼 이야기로 극 중 재판관은 하얀 분필(백묵)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아이를 세워놓고 두 여인에게 아이의 양팔을 잡아당기도록 한다. 아이가 다칠까 봐 손을 놓아버린 여인이 진짜 엄마라고 판결하는 재판관.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두 여인의 격렬한 다툼을 통해 '진정한 모성과 인간적인 사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처음 창극에 도전하는 정 연출은 국립창극단에 먼저 '창극을 연출해보고 싶다'고 제안할 정도로 이번 작업에 열의를 보였다. "영화 '서편제'에서 배우 오정해씨의 노래를 듣고 사람의 감성을 울리는 특별한 힘을 느꼈습니다. 한국 전통을 잘은 모르지만 저 역시 한 명의 한국인으로 인간의 마음을 대변하는 판소리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많은 작품 중 브레히트의 동명 원작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서는 "원작 역시 노래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아 한국의 전통 음악극인 창극과 어울리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서양의 작품과 한국의 판소리가 창극에서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 연출은 원작의 등장인물을 새롭게 재해석해 선보일 예정이다. 창극의 도창(노래나 극을 끌어가는 진행·해설자) 역할을 재판관 아츠닥에게 부여했다. 아츠닥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며 객석과 어우러지는 동시에 극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이끌어내는 정의신 표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원작은 비극이지만 창극에서는 희극과 비극이 일체된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며 "작품 곳곳에 유쾌한 웃음의 요소를 넣으려고 애를 썼다"고 밝혔다. 색다른 연출에 작품의 결말도 원작과는 다르게 그려질 예정이다.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정 연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인공 한두 사람의 극이 아닌 집단의 극"이다. 여러 배우에게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할 기회를 줘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그가 "배우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목소리"를 이 작품 최고의 매력으로 재차 강조한 이유는 여기 있다. 정 연출은 "창극과 판소리를 제대로 소화했는지 모르겠지만 무대 위 하얀 동그라미(백묵원) 안에 여러 메시지를 펼쳐 보이려 한다"며 "많은 관객이 함께 해줬으면 한다"고 미소 지었다.
작품의 주연인 하녀 '그루셰'와 그녀의 연인 '시몬' 역에는 국립창극단 인턴 조유아와 최용석이 파격 캐스팅됐다. 원작에서 남자로 설정된 재판관 '아츠닥'은 유수정·서정금이 연기한다. 21~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