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쌀시장 내년부터 전면 개방] 400% 고관세 매긴다지만… WTO 설득-한중FTA·TPP협상이 변수

1. WTO 설득… 회원국 반대땐 장기간 줄다리기 불가피

2. 한·중FTA… 협상결과 쌀시장 개방땐 고관세 무의미

3. TPP 압력… 다자협정 틀 만들어지면 안따를 수 없어

쌀시장 개방 일지

같은 시각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회원들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권욱기자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쌀 관세화 결정'을 발표한 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결국 정부의 선택은 쌀 시장 개방(관세화)이었다. 시장 개방을 뒤로 더 미룰 경우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의 물량(MMA)이 늘어 국내 쌀 산업이 고사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세화를 통한 쌀 시장 개방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고도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부가 정한 일정 수준의 세금만 내면 전세계 어느 나라나 우리나라에 쌀을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농식품부는 쌀 시장의 빗장을 열되 300~50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물려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전문가들은 향후 개방 과정에서 중대한 고비가 많아 정부의 강력한 통상 협상력이 절실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관세 전략 통할까=쌀 시장 개방의 첫 고비는 관세율 책정이다. 관세율은 우리 정부가 잠정 산출해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면 회원국 간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정부는 관세율이 300%만 돼도 우리 쌀을 충분히 보호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장관은 "6만5,000~7만원 선인 수입쌀에 300%의 관세만 부과해도 24만~25만원이 되는데 우리 쌀이 17만원이면 외국쌀을 사 먹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관세에도 쌀 수입물량이 급증할 경우 특별긴급관세(SSG)를 물리겠다는 입장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문제는 우리가 400% 안팎의 고관세를 제시했을 때 WTO 회원국들이 이를 받아줄지 여부다. 관세율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당시 기준연도인 1986~1988년의 국내 쌀값과 국제 쌀값의 차이에 10%의 감축률을 적용해 산출되는데 쌀 시세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이게 된다. 정부가 고관세를 제시하더라도 회원국이 이를 거부하면 장기간에 이르는 줄다리기 협상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종의 '당근'을 줘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최근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고(원화 강세) 있는 점을 감안하면 관세율을 최대한 높여 잡아둬야 농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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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중대변수=두 번째 고비는 이날 12차 협상을 마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정부가 WTO 회원국을 설득해 쌀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한중 FTA 협상 과정에서 쌀 시장을 여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경우 중국산(産) 쌀의 관세가 낮아져 수입 가격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중국 쌀의 평균 가격은 ㎏당 1,065원으로 우리 쌀의 절반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일부 농민단체들 역시 이 대목에서 강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관세 감축 및 철폐 압력은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며 고율 관세가 영구 불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러나 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에 대해서는 양허 제외가 기본 방침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FTA에서 쌀을 보호한다는 것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라며 "한중 FTA에서도 이 같은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 역시 "정부를 믿어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중국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쌀을 양보하는 조건으로 고추나 배추 같은 밭작물을 요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TPP 압력도 부담=마지막 고비는 우리나라가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정부는 우리가 TPP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우리와 거래하던 국가가 파트너를 바꾸는 '무역전환효과'가 일어나 10년 뒤 국내총생산(GDP)이 0.12%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공개하며 TPP 가입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문제는 TPP가 다자협정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일단 틀이 만들어지면 우리 마음대로 이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TPP의 주요 참가국인 미국과 일본이 쌀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방향으로 상품 시장 개방을 설계해놓으면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TPP 협상 과정을 예민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정부의 통상 협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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