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진단] 멈춰 선 3기 재가동 늦어지면 '겨울 전력 보릿고개' 불보듯

■ 원전 또 고장… 되풀이되는 전력난 악몽<br>올 기록적 한파 예고<br>전기요금 크게 올렸지만 수요 급격히 줄진 않을 듯<br>정부, 내년 여름까지 뾰족한 수급대책 없어 대기업 강제 절전 가능성

올겨울 강력한 한파가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28일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6.4도를 기록하자 서울 광화문에서 두터운 외투차림의 직장인들이 옷깃을 여미고 출근을 재촉하고 있다. 강추위 속에 원전 고장이 계속되면서 전력난에 대한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이호재기자


전력위기의 악몽이 또다시 되풀이될 것인가. 초겨울 강추위가 찾아온 가운데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28일 새벽에 갑작스럽게 멈춰서면서 올겨울 전력난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고리 원전은 58만kW급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지난 5월에 터진 부품 비리로 100만kW급 원전 3기가 멈춰선 상황에서 또다시 원전 고장이 발생해 전력수급의 위기감이 크게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더위를 참고 넘길 수 있는 여름과 달리 추운 겨울에는 민간을 대상으로 고강도 절전대책을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올겨울은 강력한 한파가 예고되고 있다. 기상청은 12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1월에는 일부 내륙지방에서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가는 지역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해안을 중심으로 한 잦은 폭설도 예고되고 있다. 전력사용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따라 멈춰선 원전들이 빠른 시일 내에 재가동되지 못할 경우 올겨울에도 전력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원전 1기만 추가로 고장 나도 전력 경보상황을 발령해야 하는 단계까지 들어섰다.

◇전기요금 올렸지만 수요 급격히 줄지는 않을 듯=올겨울 최대 전력수요는 겨울철 최초로 8,000만kW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수년간 전기난방이 늘면서 동계 전력수요가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의 최대 전력피크는 올해 1월3일로 최대 수요가 7,827만kW를 기록했다. 2010년 이후 매년 동계 최대 수요가 100만~200만kW가량 늘어나는 점을 고려할 때 올겨울에는 8,000만kW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최근 전기요금을 5.4% 인상하면서 약 80만kW의 수요가 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 수요에 큰 변화를 줄 만큼 요금이 인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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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력당국의 공급능력은 7,900만~8,000만kW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원전 23기 가운데 6기가 멈춰선 것이 공급능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날 멈춰선 고리 원전 1호기를 비롯해 시험성적서 위조가 드러나 케이블 교체작업 중인 신고리 1ㆍ2호기와 신월성 1호기, 설계수명이 만료된 월성 1호기, 계획예방정비 중인 한빛 4호기가 멈춰 있다.

◇12월 중 원전 재가동 여부가 수급의 핵심=결국 핵심은 멈춰선 원전이 빠른 시일 내에 재가동될 수 있느냐다. 5월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태로 멈춰선 신고리 1호기 등 원전 3기는 당초 조석 한수원 사장이 11월 말 재가동을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재가동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새로운 케이블이 시험을 통과해 현재 교체작업이 거의 마무리됐다"면서도 "12월 중에는 재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확한 일정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 원전 3기가 재가동될 경우 300만kW의 전력이 확보되면서 동계 전력수급은 간신히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이날 멈춰선 고리 원전의 경우 아직까지 재가동 일정을 종잡을 수 없는 실정이다. 고장원인에 따라 많게는 수개월 이상의 보수작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 고리 원전은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원전인데다 2008년 수명연장까지 된 터여서 원전업계에서도 불안감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력당국 올겨울 다시 '절전' 읍소 불가피=전력당국은 올겨울에 이어 내년 여름까지도 전력난을 완전히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까지 지어지는 신규 발전소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하반기는 돼야 완공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국이 최근 전기요금 인상 및 에너지가격체계 개편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수요를 줄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 확대 등 당국이 추진 중인 수요관리 대책 역시 ESS 설치비용 등이 매우 비싸 단기간에 대중화되기는 어렵다.

이에 따라 올겨울에도 당국이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강제 절전규제 및 공공기관 온도제한 등 비상대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 대책 없이 겨울을 나기에는 공급능력이 너무 아슬아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겨울 1~2월 피크기간 7주 동안 계약전력 3,000kW 이상 6,000개 대형 수용가를 대상으로 3~10%의 의무절전을 시행했다. 공공기관의 난방온도 역시 18도로 제한됐다. 올겨울에도 이와 대동소이한 대책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전기요금이 크게 오른 만큼 절전규제에 대한 산업계의 반발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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