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이라크전을 밀어붙이려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문건을 과장했다고 보도해 촉발된 BBC와 정부간의 또 다른 `전쟁`을 바라보면서 외국 언론들이 하는 말이다.프랑스계 AFP 통신은 특히 “BBC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이번 사건도 계속되는 양자간 악연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과거 영국 정부 지도자들은 BBC의 보도에 울분을 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건도 BBC가 이라크전의 명분이었던 WMD를 찾지 못해 궁지에 몰린 영국 정부를 타격을 가하는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촉발됐다. 정부는 즉각 BBC의 보도가 날조라고 반격해 정면대결을 자초했고, 이 과정에서 BBC 보도의 취재원으로 지목됐던 무기전문가가 자살하는 사건이 터져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런 양상은 수십 년 동안 정치적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있어 왔다.
앤서니 이든 총리는 1956년 수에즈 운하 위기 때 BBC의 보도에 대해 매우 불쾌해했다. 마거릿 대처 총리도 82년 포클랜드 전쟁 관련 보도에 대해 드러내놓고 불평했다. 91년 걸프전과 99년 코소보 분쟁 때도 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BBC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자국에 유리하게 보도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적국에 유리한 쪽으로 보도내용이 편향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급진적 좌파의 온상` `편협한 보수적 공룡`이라는 말이 BBC에 붙어다니는 딱지가 됐다. 정치인들은 호시탐탐 BBC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의회 문화언론스포츠위원장을 맡고 있는 집권 노동당의 제럴드 카우프만 의원은 “BBC가 유감스러운 행동을 했다”며 “이 방송을 통신과 방송 관련 통합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의 통제 하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 정치지도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BBC는 국제적으로 가장 공정한 공영방송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1927년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한 BBC는 비상업적이고 공익적이며 수준 높은 프로그램 공급을 지향해 왔으며 자신들의 지향점을 잘 지켜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BC의 최고의결기관은 12명으로 구성된 경영위원회이다. 이들은 모두 정부가 임명하지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 오늘날의 BBC를 만들어냈다. 품격 높은 방송을 위해 자기 혁신을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도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로드 앨런 런던 시티 대학 언론학과장은 “모든 영국 정치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BBC를 억누르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BBC가 그들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철훈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