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금 보릿고개 중기가 운다/시름깊은 추석맞이 중기표정

◎상여금지급업체수 작년 절반 수준/기아협력사 “추석 차라리 없었으면”/“총액한도대출 확대등 지원” 목소리추석을 목전에 둔 요즘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수도없이 겪어온 자금난이지만 이번 추석 돈가뭄은 예전에 없이 심하기 때문이다. 긴 불황과 대기업의 잇단 부도여파로 자금사정이 어느때보다도 좋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일찌감치 예상했던 터다. 그러나 당장 추석급여와 상여금조차 주지 못하는 현실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한다. 당장 추석 봉급과 상여금을 못주면 직원들의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소기업 경영자나 근로자 모두 명절을 코앞에 두고 극심한 자금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것이다. ○…벽돌 제조업체인 K사는 통상 월 급여의 1백%를 추석보너스로 주어 왔으나, 이번 추석에는 10만원씩의 위로금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자금사정이 워낙 나쁘기 때문이다. 이회사의 C사장은 연일 은행으로 자금을 구하러 뛰어 다니고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시 정기적금 가입을 요구하는등 꺾기가 심해 뾰죽한 수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배합사료를 생산하고 있는 H업체는 아예 상여금 지급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원자재의 95% 이상을 수입하는 실정에서 최근 3개월간 원화의 대달러 환율이 10원이상 인상되는 등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됐으며, 담보여력이 없어 금융기관에는 문턱도 밟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누적에 따른 생산라인 가동마저 여의치 않아 추석 연휴기간도 예년에 비해 1∼2일 정도 늘려야 할 형편이다. 상황이 조금 나은 업체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열장 장식장 등 수납장을 제조하고 있는 Z사의 K사장은『다행히 회사가 은행으로부터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돼 어음할인에 유리한 입장이지만 만일을 위해 사채업자 1∼2명과도 꾸준히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K사장은 그러나『최근들어 사채시장에서도 보증인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할인이자도 3부에서 5부까지 뛰어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썰렁한 추석 풍속도는 공단이라고해서 예외가 아니다. 한마디로 이번 추석은 상여금 지급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고 대신 휴무기간이 늘어날 것으로 요약되고 있다. 실제 통상산업부가 최근 한국수출공단, 남동공단 등 전국 12개 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2천7백8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추석 상여금을 지급하는 업체는 지난해보다 5.7%포인트 줄어든 79.1%로 집계됐다. 이중 월급의 1백% 이상을 상여금으로 지급하는 업체는 전체의 38.6%에 불과한 반면, 1백% 미만의 상여금을 지급하는 업체는 지난해보다 21.3%포인트나 늘어난 40.5%에 달했다. 아예 상여금을 주지않는 업체도 지난해의 15.2%에서 올해는 20.9%로 늘어났다. 절반이상의 업체(65.6%)가 1백% 이상의 상여금을 지급했던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돈가뭄의 도가 얼마나 심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추석휴무의 경우 4일이 전체의 72.4%로 가장 많았으나 5일과 6일을 쉬겠다는 업체도 각각 20.8%, 2.6%로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추석을 앞둔 시름은 한보, 삼미, 기아 협력업체가 더욱 심하다. 부도 및 부도유예협약에 따른 후유증 치유없이 또다시 자금난을 맞았기 때문이다. 특히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려온 기아 협력업체들은 보름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남의 일로만 여겨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루 하루 부도위기를 넘기고 있는 입장에서 추석 운운 하는 것 차체가 사치스런 얘기란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기아간의 지리한 줄다리기에 돈줄이 막혀 버린 기아 협력사들은 최근의 상황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비유하고 있다. 기아협력사가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진성어음의 할인이다. 정부가 기아발행 진성어음을 활인해주는 시중은행에 대해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중 소진되지 않고 남은 3천5백억원을 지원해 주기로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아협력사들은 이같은 정부의 방침이 일선창구에서 제대로 시행될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도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기아협력회의 한 관계자는 『어음할인이 개별업체의 신용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일선창구에서 담보 등을 요구하게 되면 실제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정부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선창구를 믿지 못하는 것은 비단 기아협력사뿐만이 아니다. D기업의 L사장은『한보 삼미, 그리고 기아사태이후 정부의 지원시책이 없어 자금난을 겪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어음할인과 신규대출에 잔뜩 몸을 움추리고 있는 금융기관의 자세 전환부터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업계 일각에서는 추석 돈가뭄을 포함한 일련의 자금대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을 올해에 한해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자율화 추세에 맞춰 정책금융을 축소하고 통화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총액한도대출을 줄이고 있는 정부의 시책은 이해를 하지만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같은 방안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재정에서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세수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을 통한 지원이 다소 힘들 것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총액한도대출 확대가 어렵다면 어음보험기금과 공제사업기금 대한 출연금을 늘려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중소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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