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9월 17일] 몸으로 때우는 효도

지난 추석에는 모처럼 형제들과 함께 팔순 노모가 홀로 계시는 고향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장남인 필자로서는 어머님을 모시고 싶으나 한사코 거절하셔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생활하신 지가 벌써 15년이 되고 있다. 나름대로 효도랍시고 매일 아침 전화로 문안 인사를 드린다. 매일 드리는 안부 인사인지라 아무리 너스레를 떨어보려 해도 통화가 짧을 수밖에 없다. “어머님! 접니다. 지난밤에도 잘 주무셨습니까?” “오냐, 너도 잘 잤니. 오늘 하루도 좋은 날이 되기를 바란다.” “네. 어머님도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멀리 고향에 홀로 계신 노모께서 지난밤에도 잘 주무시고 새로운 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필자 또한 하루를 힘차게 보낼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 늘 감사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고는 한다. 막내 남동생이 언제부터인가 필자의 이 전화 효도망(?)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필자가 전화하는 시간인 오전7시30분께보다 30분 정도 앞선 시간인 오전7시께 어머님에게 매일 전화를 드리고 있다. 동생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전화 효도밖에 없지만 자기는 전화 효도뿐만 아니라 2주에 한번 정도 내려가서 어머님께서 좋아하시는 고스톱을 함께 쳐드리는 소위 ‘몸으로 때우는 효도’를 하니 자기가 더 효자라는 주장이다. 이번 추석에 벌어진 화투판에서도 과연 어머님께서는 고스톱 치기를 좋아하시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화투장만 들면 그토록 아프던 무릎도 안 아프고 무엇보다 무리하게 ‘고’를 부른 동생에게 피박을 씌우고 나서는 박장대소하시는 모습에 필자도 덩달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재미삼아 걸어놓은 얼마간의 금전보다는 장성한 자식들의 숨결을 피부로 느끼는 어머님의 기쁨을 볼 때마다 다시금 어머님의 ‘품 안 자식’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부모님께 춤을 추면서 효도를 했다는 노래자(老來子)의 고사처럼 피박을 당할 줄 번연히 알면서도 고를 외치는(?) 동생의 ‘몸으로 때우는 효도’를 직접 보면서 필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네가 나보다 더 효자다!’ 못난 이 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틀거릴 때마다 어디에서 그런 지혜가 나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늘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새벽마다 우리 형제들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시는 어머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시기에 필자는 오늘도 매 순간이 그저 감사하고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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