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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수호 맡은 '성전기사단' 금융활동으로 막대한 자산 보유
천문학적 전쟁 비용 필요했던 佛 필리프 4세엔 눈엣가시로
이단 혐의 씌워 기사단 해체
관련 역사·신화 함께 풀어내
"참으로 참담한 자들이다. 개탄스럽기 그지없는 자들이다. 상상하기에도 끔찍하고 귀로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혐오스러운 범죄 집단이다. 그 사악함과 혐오스러움은 비인간의 경지에 달하였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망종들이다."
1307년 9월,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비밀 명령서를 통해 프랑스 전역에 체류 중인 '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한다. 이유는 신성모독, 이단, 난교. 추악한 범죄의 끝은 화형이었다. 혐오, 사악, 망종… 불명예스러운 혐의와 평가 속에 한 줌 재로 변한 주인공은 성전기사단. 1119년 십자군 원정의 성과로 얻은 성지 예루살렘을 수호하기 위해 창설된 조직이다. 한 때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이자 '동방의 구원자'로 이름을 날린 이들이 200년 후 입에 담지 못할 혐의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1년 로마 바티칸 교황청 비밀 문서고에선 성전기사단에 대한 충격적인 기록이 발견된다. 700년 전 이들에게 씌워진 이단 혐의가 무죄였다는 재판 기록이다. 책은 성전기사단과 관련된 역사와 전설, 유적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창립 배경부터 전성기, 이단 혐의로 몰락하기까지의 부침을 추적해나간다.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를 이단으로 몰고 간 것은 적군이 아닌 아군이다. 저자는 기사단 몰락의 결정타가 된 필리프 4세의 체포 명령의 배경을 '금전적 욕망'에서 찾는다. 프랑스의 왕이 기사단이 보유한 부를 빼앗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리프 4세는 기사단 박해 전 이탈리아 은행가들과 유대인 사채업자들의 재산을 강탈하고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부과해 종교인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잉글랜드·플랑드르와 전쟁을 치르느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기사단은 그야말로 입맛 당기는 먹잇감이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 성전기사단은 금융 활동을 통해 막대한 유동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년 가까이 교황에게만 충성하고 그로부터 보호를 받는 독립 단체였던 기사단이 세속의 권력인 프랑스 왕에 의해 재판에 넘겨진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계속된 신문 과정에서 이뤄진 고문과 모욕은 기사단 몰락을 가속했다. 기사단원들은 고문에 시달리다 결국 혐의를 인정하게 됐고, 1314년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인 자크 드 몰레가 화형으로 눈을 감는다. 2001년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기사단 체포 후 교황청 특별조사위원회가 비밀리에 신문을 진행했지만, 이단 혐의 사실을 찾지 못했다. '우리는 그(자크 드 몰레)를 교회 공동체의 일원임을 다시 인정하면서 신자들과의 교류 및 교회 성사에 참여할 권리를 회복시키기로 한다.' 교황의 사면령 공표가 진행되는 사이 필리프 4세는 기사단원들의 형을 집행하고 그들을 해체했다.
성전기사단의 몰락은 어쩌면 '존재 이유'가 사라진, 아니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기능 다 한 수단의 씁쓸한 최후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의 기수로서 활약했지만, 결국 이 전쟁은 1291년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 성지를 완벽히 차지하며 사실상 막을 내렸다. 기사단이 구원해야 할 동방도, 그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더는 없게 된 것이다. 성전기사단의 역사는 물론 오늘 날 이들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각종 신화를 풍성한 자료와 흥미로운 전개로 풀어냈다. 2만 5,000원.
사진제공=책과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