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1월 12일]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역량

지난 2006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귀환’했다. 이번에는 재협상 문제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한미 FTA는 아직도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다. 정부는 몹시 난감하고 곤혹스럽지만 한 가지 지켜볼 만한 대목은 있다. 쉽게 드러나지도 평가하기도 어려운 정부 외교력의 현 주소다. 외교통상부는 장관을 비롯해 통상교섭본부장ㆍFTA교섭대표 등 고위 간부 모두가 분명하게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역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미 FTA에 반대하는 버락 오바마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치권ㆍ연구소ㆍ시민단체ㆍ언론 등 여기저기서 재협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관례에 맞지 않고 명분도 없는 재협상이지만 상대가 미국인데다 백악관 주인마저 바뀌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페루ㆍ파나마ㆍ콜롬비아 등과 FTA 협정문에 서명하고도 잉크가 마를 사이도 없이 염치 좋게 재협상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듯 재협상은 한미 FTA를 죽이는 길이다. 어떤 형태의 재협상이든 수용하면 한미 FTA는 즉각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사태 이상의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1년 2개월의 협상기간 동안 1,500여페이지에 걸쳐 세밀하게 맞춰놓은 통상대국 간 이익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일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미국은 우리에 재협상이라는 ‘선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달라고 한다면 자동차를 원할 것이다. 진심어린 축하 외에는 오마바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무엇인가를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미국 측은 그것을 원할지 모른다. 재협상의 문제를 훤히 아는 정부가 은밀히 FTA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동차를 주고 미국을 달랠 수 있다. FTA도 경제도 아닌 외교ㆍ군사 분야의 다른 곳에서 오바마의 등을 긁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뒷거래들은 국익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 미국이 손을 내밀더라도 우리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주머니에 손을 살포시 돌려넣게 하는지 국민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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