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귀환’했다. 이번에는 재협상 문제다.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한미 FTA는 아직도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다. 정부는 몹시 난감하고 곤혹스럽지만 한 가지 지켜볼 만한 대목은 있다. 쉽게 드러나지도 평가하기도 어려운 정부 외교력의 현 주소다.
외교통상부는 장관을 비롯해 통상교섭본부장ㆍFTA교섭대표 등 고위 간부 모두가 분명하게 “재협상은 없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역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미 FTA에 반대하는 버락 오바마가 차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치권ㆍ연구소ㆍ시민단체ㆍ언론 등 여기저기서 재협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관례에 맞지 않고 명분도 없는 재협상이지만 상대가 미국인데다 백악관 주인마저 바뀌니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로 여기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페루ㆍ파나마ㆍ콜롬비아 등과 FTA 협정문에 서명하고도 잉크가 마를 사이도 없이 염치 좋게 재협상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잘 알고 있듯 재협상은 한미 FTA를 죽이는 길이다. 어떤 형태의 재협상이든 수용하면 한미 FTA는 즉각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사태 이상의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1년 2개월의 협상기간 동안 1,500여페이지에 걸쳐 세밀하게 맞춰놓은 통상대국 간 이익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일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미국은 우리에 재협상이라는 ‘선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달라고 한다면 자동차를 원할 것이다. 진심어린 축하 외에는 오마바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무엇인가를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미국 측은 그것을 원할지 모른다. 재협상의 문제를 훤히 아는 정부가 은밀히 FTA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동차를 주고 미국을 달랠 수 있다. FTA도 경제도 아닌 외교ㆍ군사 분야의 다른 곳에서 오바마의 등을 긁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뒷거래들은 국익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는 없다. 미국이 손을 내밀더라도 우리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주머니에 손을 살포시 돌려넣게 하는지 국민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