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보 부도결정 “의문 투성이”/일시 자금난이 주인… 설득력 약해

◎“3자인수 확실 보장” 묵계 가능성도/채권은행단의 아리송한 태도/담보 부도일엔 “부족” 부도후엔 “넉넉”/이자수입 격감 등 큰 손해 감수 인상/정 총회장 경영권포기에 지나친 집착『(철강산업이) 경제성은 있다. 한보철강의 부채보다 담보가 1천4백42억원이나 많다. (당진제철소가) 완공되면 담보가액은 더 올라간다.』(한승수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 『한보철강공장은 국가 기간산업체로서 필요하고 금융비용만 이렇게 높지 않았다면 타당성있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하고 있다.』(이석채 청와대경제수석) 『전체적으로 보면 (한보철강의) 담보가 대출보다 많다. 담보가 남는 은행분에 대해 다른 은행들이 보완적으로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이수휴 은행감독원장) 금융계 사령탑인 이들 3인은 지난 27일 약속한듯 일제히 말문을 열고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을 만났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 말대로라면 한보철강은 담보도 충분하고 사업성도 있는데 일시적인 자금애로 때문에 부도를 낸 셈이다. 정총회장도 공교롭게 같은날 부도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한보철강의 자산이 부채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채권은행단 주장도 며칠새 달라졌다.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된 지난 23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월10일 현재 은행들의 여신(대출+지급보증)규모는 3조4천7백67억원인데 담보는 2조6천9백40억원에 불과, 담보부족규모가 7천8백27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불과 4일후인 27일 제일은행이 다시 작성한 자료는 1월25일 현재 여신 3조3천5백58억원, 담보 3조5천억원으로 담보가 1천4백42억원이나 남는 것으로 되어있다. 보름새 여신은 1천2백9억원이 줄어들고 담보는 8천60억원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산업은행의 경우 여신이 5백73억원 감소한 반면 담보는 무려 3천9백89억원이나 증가했다. 조흥은행도 1월10일에는 담보가 2천4백10억원이나 부족했는데 보름후에는 1백45억원의 담보가 남는 것으로 바뀌었다. 은행들은 이에 대해 한보철강 부도직후 은행들이 한보그룹의 예금을 대출과 상계해 여신규모가 줄어들었고 담보는 후취담보분과 이면담보(비공식으로 잡아놓은 담보)를 처음에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또 당진제철소 부지 90만평을 당초 평당 40만3천원으로 평가했으나 최근 시세가 평당 1백만원을 넘고 있어 담보는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단과 금융당국이 부도후 며칠만에 한결같이 「넉넉한 담보」를 주장하면서 은행들의 손해가 그리 크지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같은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한보철강을 굳이 부도낼 이유가 있었느냐는 의문이 남게 된다. 담보가 충분하니까 부도를 내더라도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보철강의 담보가 대부분 공장설비이기 때문에 공장이 정상가동될때 담보가치가 있는 것이지, 부도처리되면 고철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3자인수가 확실히 보장되어야만 담보를 믿고 부도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한보그룹은 앞으로 4천억원정도만 추가 지원하면 공장 완공및 정상가동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보를 부도내고 3자인수를 추진하더라도 공장완공에 필요한 자금 4천억원은 물론, 3자인수과정에서 추가로 자금을 지원해야 할 상황이다. 한보측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채권은행으로서는 한보측에 4천억원을 지원하고 공장을 완공시키는 게 자금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더구나 한보철강등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이자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그런데도 채권은행단은 한보그룹을 부도처리,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물론 관련당국자들은 그대로 두면 한보측의 자금지원이 4천억원이 아니라 1조원은 넘을 것이라는 가정을 들어 부도처리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나 이는 추론일 뿐이다. 제일은행등은 2금융권에서 대출회수를 요구, 한보철강의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부득이 부도를 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도직전 제일은행등은 정태수 총회장이 경영권을 포기하면 추가 자금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었다. 정총회장이 경영권만 포기했다면 한보철강의 부도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채권은행단과 금융당국의 주장이다. 과연 정총회장의 경영권 포기가 한보의 부도와 이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비용 부담을 불러올 만큼 중요한 일이었느냐는 점도 의문이다. 또 이석채 경제수석은 종금사들이 채권담보용으로 보유하고 있던 백지어음을 교환에 돌려 부도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종금사들의 대출은 거의 다 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은 것이므로 떼일 염려가 없어 어음을 교환에 돌릴 이유가 없으며 실제 교환에 돌리지도 않았다는 게 종금사들의 주장이다. 한보그룹에 대한 엄청난 자금지원이 숱한 의혹을 낳고 있듯 부도결정 역시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과연 한보부도가 무슨이유로 이뤄졌는지도 수사과정에서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듯이 대선전에 한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였는지, 한보 정총회장의 주장처럼 음해세력의 음모가 있었는지 국정조사나 수사과정의 과제로 남아있다.<이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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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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