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컨설팅] 포드와 휴렛패커드의 품질경영

1980년대초 2차대전 승전국 미국인들의 자존심은 패전국 일본에 의해 형편없이 구겨졌다. 한 공중파 방송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방영된 「왜 일본은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안되는가」라는 TV 프로그램이 결정타였다. 당시 미국의 제조업은 품질좋고 값싼 일본 경쟁자들의 공세에 밀려 쩔쩔매고 있었다.특히 GM, 포드 등 자동차 3사는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도 잠깐일 뿐 월등한 품질 수준을 가진 일제차를 사는 고객을 원망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일본은 고장나지 않는 차를 값싸게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미국 기업들은 왜 안되는가라는 자괴적인 반성이 이 프로그램의 요지였다. 그날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이들 자동차 메이커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풍전등화와 같던 신세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산업의 리더로서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곧 망할 것 같던 이들이 나름대로의 재기에 성공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바로 이 특집프로그램이 던져준 충격과 이를 통한 뼈아픈 자기 반성을 밑거름으로 한 신뢰 회복의 노력 때문이었다. 포드 자동차의 재기 GM에 이어 미국내 2위인 포드는 70년대말까지만 해도 품질불량으로 인한 잦은 고장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곤두박질치고 재무적 성과 측면에서도 위기에 빠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당시 포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회사들의 살 길은 명확했다. 토요타나 혼다의 제품 품질 수준을 무조건 따라가서 땅에 떨어진 고객들의 신뢰를 되찾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그럴 듯한 디자인의 제품을, 앞서 있는 딜러망을 통해 깔아놓아도 품질에서 뒤진 제품을 고객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자율 규제라는 미명하에 일본차의 수입 총량을 묶어 놓고 한숨을 돌리는 사이, 품질 수준을 회복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포드는 대대적인 품질 개선 운동에 착수했다. 벤치마크는 일본의 혼다나 토요타였다. 가장 먼저, 오래전 일본에 가르쳐주기만 했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전사 품질 운동(TOTAL QUALITY MANAGEMENT:TQM)」을 살려 냈다. 품질수준 향상과 제품 개발기간의 단축을 위해 일본 기업들이 하고 있는 컨커런트 엔지니어링 기법을 도입했다. 제품 개발단계에서부터 연구개발 및 생산관련 인력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예상되는 품질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제품 개발의 관점도 내부개발자 중심에서 고객중심으로 바꾸었다. 부품 하나 하나, 디자인 하나 하나를 결정하는 첫번째 기준을 고객 만족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포드는 자존심을 버리고 일본이 잘하는 것들은 철저히 배워서 현장에 적용해 나가기 시작했다. 공장 근로자들을 단순 노무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현장에서 발생하는 생산 과정의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해결하도록 촉진시켰다. 전직원의 참여를 통해 점진적인 개선을 이루어 가는 일본식 「개선운동」을 참조한 것이었다. 이 회사의 품질 경영은 자사의 공장뿐 아니라 협력업체까지 확대되었다. 자동차라는 제품의 특성상 협력업체의 품질 향상없이는 완성품의 품질 향상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때문이었다. 이 일환으로 포드는 자체적으로 「Q1」이라는 품질상을 제정, 매년 우수협력업체에 대해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지속적인 품질개선 운동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은 포드는 광고선전의 문구도 「최근에 포드자동차 타보셨습니까(HAVE YOU RECENTLY DRIVEN A FORD?)」로 바꾸었다. 비로소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한 것이다. 무려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문구는 포드자동차의 광고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속적인 품질경영의 성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토러스, 익스플로어 등 고객으로부터 신뢰받는 신차들을 연속적으로 출시하여 빅 히트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토러스는 미국산 자동차의 자존심으로서 혼다의 어코드나 토요타의 캠리와 함께 월드 베스트카를 다투는 정도가 되었다. 이 결과 재무적 성과도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품질향상 및 원가절감을 통해 지속적으로 축적된 현금 유입을 바탕으로, 수년전 일본의 세계적 메이커인 마쓰다의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아자동차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포드가 이와 같이 눈부신 재기를 할 수 있었던 디딤돌은 의심할 여지없이 제품 품질 향상에 대한 열의와 전사적인 몰입에 있었다. 품질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기업은 결국 시장에서 발 디딜 자리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뼈아프게 인식하고, 집요한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켜 온 성과였다. 휴렛패커드의 품질 정신 오늘날 전사 품질 운동은 단순히 생산 표준의 준수 차원을 넘어 고객 만족 및 종업원의 참여, 학습능력 제고차원으로 진보되어 있다. 과거 단순히 제품규격 준수 정도로만 품질을 정의하던 상태에서는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한 제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고객이 원하는 품질」이라는 컨셉에 가장 충실한 품질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미국의 휴렛패커드(HEWLETT PACKARD, HP)이다. 이 회사는 미국 첨단기술의 자존심 실리콘 밸리의 신화를 낳게 한 모태 기업이다. 두 창업자 빌 휴렛과 데이브 패커드가 최초의 오실레이터 제품을 생산한 팔로알토의 한 차고 건물은 현재 실리콘 밸리의 출발지로 기념되고 있을 정도다. 이 회사의 역사는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품질경영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최초의 품질 서클을 조직한 이래 지속적인 품질 향상 운동을 발전시켜, 1997년부터는 「품질 성숙화 시스템(QUALITY MATURITY SYSTEM, QMS)」 버전 3.0에 이르고 있다. 거의 20년간이나 품질경영이라는 주제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회사의 품질 운동은 단순한 구호차원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인 성과 점검과 반성을 통해 한 단계씩 진보된 개념으로 발전되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QMS 3.0은 이전까지의 품질운동이 기계적인 수치 표준의 달성에 치우쳐 진정한 고객 만족의 개념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QMS 3.0은 고객 한사람 한사람을 개별적으로 만족시킨다는 뜻을 가진 「QUALITY 1 ON 1」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 철학을 반영하여 제품의 품질도 개발 단계에서부터 고장율 저하 및 애프터서비스 단계에 이르는 총체적인 고객 만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품질 경영의 실천을 위해서 「제품 품질」이외에 「사람의 품질」 및 「경영시스템의 품질」 등 3위일체를 강조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제품 품질은 생산 규격의 준수에 가까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사람의 품질면에서는 전체 종업원들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전 종업원이 열의를 가지고 고객 만족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을 이루어 내지 않는 한, 품질경영의 성과 실현은 무망하다는 이 회사 특유의 철학이 뒷받침된 것이다. 또 경영 시스템의 품질은 계획, 고객 지식, 행동에 이르는 일련의 가치 전달 사이클을 체질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의 결과 이 회사의 품질 운동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심지어 품질 운동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는 일본 기업들조차 자신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국 기업들에게 『왜 우리로부터 배우려고 하느냐, 우리가 배운 HP를 바로 근처에 두고』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었다. 서비스 기업들도 품질이 기본 미국 기업들의 품질 운동은 제조업체에만 국한되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수의 서비스 기업들이 전사 품질 운동을 경영활동에 직접적으로 접목시켜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신용카드, 은행 등 고객과의 접촉이 빈번한 금융권 및 병원 등에서 품질경영 기법을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고객 만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품질 경영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서비스 기업들의 품질경영에 대한 의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신용카드사의 경우를 예로 들면, 고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벨이 최초로 울린후 몇초만에 응답이 이루어지고, 이후 얼마만에 통화가 완료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목표로 하는 표준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내에 응대가 완료되지 못할 경우 품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 된다. 정량(定量)적 지표이외에 응대의 친절성, 전달의 내용 및 응대원의 응대 관련 지식 등 정성(定性)적인 부분도 물론 점수화되도록 되어 있다. 월단위로 이러한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에만 조직원 전체에 보너스가 지불되도록 하여 전 종업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제조업 품질 경영에서 배워온 것이다. 고객 만족의 달성을 위해 요구되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의해 두었기 때문에 말만 요란하고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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