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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SectionName(); [프로를 만나다] '19路 검객' 유창혁 9단 빈틈없이 고삐 죄는 기풍… "역시 일지매"찬찬히 반상을 살피는 눈빛서 차분한 프로 면모 볼 수 있어아마에 5점을 접어주었는데도 살짝 비틀면서 급소 누르고얄미울 정도로 들어맞는 계산'최고의 공격수' 그 자체 김형기기자 kkim@sed.co.kr 최근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지도대국에서 유창혁 9단과 김형기 본지 부국장 겸 금융부장이 반상을 살펴보고 있다. 유 9단은 5점을 접어줘야 하는 하수를 대하면서도 빈틈없이 고삐를 죄는 진정한 프로의 면모를 보였다. /김동호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찬찬히 반상을 살펴보는 눈빛. 참 차분해 보인다. 사쁜거리듯 돌을 집어 내려놓는 손길. 중년을 향해 가는 사나이에게는 안 어울릴 듯한 표현들이지만 너무 잘 들어맞는다. 당대 최고의 공격수, 일지매라는 별칭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유창혁(44ㆍ9단) 사범을 한국기원 특설대국실에서 마주했다. "(겸손을 떤다는 기분으로) 동네 기원급수로 약한 3급 정도 됩니다. 치수를 어떻게 하면 될지." "보통 3급이면 6~7점 놓으시면 되는데…." 흘끗 나를 바라보던 유 사범이 "5점 놓으시라"고 말한다. 아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물 흐르듯이 담담하게 시작하고 싶었는데 바둑판에 5점을 늘어놓으면서부터 속으로는 벌써 주눅이 들었다. 유창혁이 누군가. 한국의 바둑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지난 1980년대 당시 기전이란 기전의 모든 타이틀을 걸고 조훈현ㆍ서봉수ㆍ이창호 9단과 더불어 '4인방'을 이루며 최고봉을 형성했던 천재기사가 아닌가. 그가 내 앞에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근데 왜 6점이 맞을 듯하다면서 5점을 놓으라고 했을까. 손가락도 약간 떨리는 듯하다. "한수 가르침 바랍니다." 표현은 지도대국인데 워낙 까마득한 높이에 있는 유 사범인지라 그가 내게 알려주는 바둑의 이치나 깊이를 한가지라도 알 수는 있을는지…. '딱' 그가 첫 수를 뒀다. 처음에는 무조건 뜸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손이 따라나간다. 유 사범과 대국하기에 앞서 마음속으로 '한 수에 최소 1분씩 생각하자'고 다짐했건만 뜻대로 안 된다. 너무 빤한 수를 두면서 뜸을 들인다는 것이 마치 맹문이의 '프로 흉내내기'로 비칠 것 같아 도저히 못하겠다.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될 때까지는 아는 만큼만 일단 가보자. 바둑돌을 놓으면서도 웬 생각이 그리 많이 드는지…. 살짝 고개를 흔들고 자세를 다잡았지만 눈깜짝할 사이에 벌써 20여수를 둬버렸다. '아이고.' 옆에서 관전기를 쓰겠다고 자리를 함께 한 한기석 기자가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쳐다볼지 그것도 신경이 쓰였다. 기보 또는 바둑TV 등을 통해서 유 사범이나 바둑 고수들의 수를 참 많이 봤는데 쉬워 보이는 저 수들이 왜 내 앞에 놓이니까 다른 의미를 품은 듯 보이는지 모르겠다. '비굴하게 보이더라도 단단하게 지키면서 둘까? 유 사범 정도의 고수라면 내가 두는 수들에서 내가 얼마나 겁을 먹고 있는지 분명히 알 것 같은데. 사나이 가는 길 바둑 한판 때문에 겁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안 되겠지.' 뻔히 돌끼리 부딪히면 하수가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덤벼본다. 가벼운 잽 몇 방에도 벌써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내상이 깊어진다. "으음."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온다. 유 사범을 좀 흔들어봐야겠다. 실력이 안 되면 말 펀치라도 날려볼까. "우리 오럴헤저드(말로 하는 방해공작)도 있기로 하지요." "제가 시작하면 김 부국장님이 못 견딜 텐데요." 더 세게 나온다. 없던 일로 해야겠다. "멀리건(무르기) 안 줍니까?" "나중에 복기해드릴게요." 하기야 물러준다고 해도 어디 한수만의 문제겠는가. 유 사범하고 가급적 오래 바둑을 두고 싶은데 돌이 흘러가는 모양새가 '희망사항'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5점이라는 군사력을 믿고 완력으로 밀어붙이는데 살짝살짝 비틀면서 급소를 눌러온다. 몹시 괴롭다. 드디어 내게도 승부의 기회가 온 것 같다. '이걸 확 끊어야 하는데. 1분만 생각하자. 딱 1분만 더 생각하자. 끊어도 되나. 최고수의 돌을 끊다니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예의가 있지 고수의 실수나 무리를 물고늘어지는 것이 결례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내 돌을 먼저 보강할까. 고수들은 초읽기에 몰려서 시간벌기로 던지는 수는 웬만하면 받아주던데…. '앗. 어떻게 거기서 손을 빼지?' 다시 보니 '허방수'다. 일단 생각할 시간을 좀 벌어야겠다 싶어 절대 선수라고 보이는 곳을 두었는데 싹 외면하고 끊길 곳을 보강한다. 유 사범은 벌써 몇 차례나 '나의 절대 선수'를 무시하고 있다. 얄미울 정도로 계산이 맞다. 이것을 반드시 응징해야 하는데…. 아! 잘 안 된다. 과감하게 끊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유 사범이 남의 집 안방에 들어온다. 나를 업수이보는 것도 정도지. 잔뜩 독이 올라 뚝딱뚝딱 두다 보니 패가 나온다. 망했다. 바둑은 이쯤에서 이미 요단강을 건넜다. 채 100수도 안 된다. 체면이나 차려야지 싶어 여기저기 건드리는데 다 받아준다. 유 사범이 갑자기 패에서 손을 빼고 철옹성 같은 귀를 공략한다. 설마 죽겠냐 싶었지만 혹시나 해서 보고 또 봤다. 도저히 죽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실리를 맞춰보려고 멋지게 손을 뺐다. 유 사범이 또 귀에 돌을 놓는다. 어 이상하다. 다시 한번.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살려고 들면 두 집 내고 살겠는데. 너무 구차스럽다. 게임에는 지더라도 기세는 살려야겠다.' 최대한 버티는 수를 구사했다. '왜 저기에 돌을 놓지? 또 그러네.' 돌 하나를 따냈다. 그때였다. 마지막 숨통을 끊는 수. "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졌다. 머리를 싸맸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오궁도화. 바둑은 그렇게 무참하게 끝났다. '설마 5점이나 뒀는데'라는 아마추어의 기세는 이미 지하 깊숙이 파묻혔다. 유 사범이 씩 웃는다. 마지막 말이 내 가슴을 후벼 판다. "3급으로는 강한데요." 유창혁 9단은… ▦1966년 4월 서울 ▦1977년 3회 어린이 국수전 우승(3연패) ▦1984년 6회 세계아마대회 준우승(입단) ▦1993년 6회 후지쯔 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1996년 3회 잉창치배 우승▦2000년 5회 삼성화재배오픈 세계대회 우승 ▦2001년 3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2002년 LG배 세계기왕전 우승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