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글로벌 포커스] 딜레마에 빠진 '미군기지 이전'… 하토야마 '사면초가'

선거때 공약 뒤짚고 美와 '후텐마 기지 현내 이전' 합의<br>오키나와현 주민들 반발 확산… 역대 정권중 지지율 최저<br>"이달까지 해결 못할땐 사임 촉구 목소리 나올것" 전망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사면초가(四面楚歌).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후테마(普天間) 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궁지에몰리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현재 상황이다. 54년만의 정권교체에 성공,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들어선 하토야마 정부는 지난해 9월 집권 이후 불과 9개월만에 존립 위기에 빠졌다. 교도통신은 지난달 말 여론조사 결과 하토야마 정권 지지율이 20.7%로, 일본 언론이 실시한 정권 지지도 조사에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이달 말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사임해야 한다는 응답도 54.5%나 됐다. ◇ 딜레마에 빠진 하토야마의 기지 이전 공약 =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4일 오키나와현을 공식 방문, 현지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만나 '후텐마 기지 분산 이전안'을 공개하고 받아들일 것을 호소했지만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여론만 다시 확인했다. 이날 공개된 기지 분산 이전안에 따르면 후텐마 기지의 활주로 등 주요 시설을 현내 또 다른 미군기지인 캠프 슈워브(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에 위치) 근처로 옮기고, 헬리콥터부대 등은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가고시마(鹿兒島)현 도쿠노시마(德之道)로 옮긴다는 것. 이는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내로 이전한다는 기존 미ㆍ일 합의안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최대 1,000명의 병력과 시설을 현외로 옮겨 오키나와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절충안이다. 하지만 이 절충안은 오키나와 주민들뿐 아니라 상당부분 시설이 옮겨질 새 지역의 주민들까지반발하는 '불에 기름을 붇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하토아먀 총리가 지난해 중의원 선거 당시 내건 '후텐마 기지의 일본외 이전, 최소한 현외 이전'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연립정권의 구성원인 사민당과 국민신당 역시 분산 이전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 문제를 5월 말까지 최종 해결하겠다"며 "만약 실패한다면 책임을 지겠다"며 공언해 왔다. 그러나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하토야마 총리가 내놓은 분산 이전안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분석한다. 5월이 며칠 남지 않은 데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반대파들이 하토야마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뿌리깊은 반미 감정 = 미군 기지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적대감은 뿌리가 깊다. 오키나와 섬은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서 최고 요충지로 꼽히기 때문에 현재 일본 내 미군 기지 면적의 43%, 주둔 인원의 절반 이상이 이 곳에 집중돼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그간 미군 부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음공해 및 환경오염 등을 참아 왔다. 오키나와는 특히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 시절에 '군부대 지역'이라는 이유로 사회간접자본 건설 등 각종 개발계획에서 제한을 받아 경제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95년 미 해병대원들이 12세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 기지 반환 여론은 폭발했다. 두 나라는 이듬해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대표격인 후텐마 기지를 이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기지 이전 문제는 2004년 후텐마 기지 인근의 대학 캠퍼스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자 다시 불거졌다. 이에 미국과 일본 정부는 다시 협상을 갖고 캠프 슈워브 연안을 매립해 2개의 활주로를 건설, 오는 2014년까지 기지를 이전키로 2006년 합의했다. 당시 아베신조(安倍晋三) 정권은 "1만8,000여명의 후텐마 기지 주둔 병력 중 최대 8,000여명을 괌으로 이전하는 대신 헬리콥터 부대는 오키나와 내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미국 측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민주당이 뒤집은 현내 기지 이전 합의= 하지만 현내 미군기지 존속 문제는 지난해 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최대 정치현안이 되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부터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내 이전을 줄곧 반대해 왔고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이를 공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기대감에 한껏 부푼 오키나와 주민들의 표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정권 안팎에서는 그러나 하토야마 정권이 이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사전준비 및 역량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크게 증폭됐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최근 "미일간의 후테마 기지 이전합의는 끈기를 갖고 매달려 어렵게 얻어낸 결과"라며 "하토야마 총리는 플랜 B(대안)를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왜 이 합의를 깨뜨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도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한 실무급 협상도 잠정중단, 일본 정부에 기존 합의안의 이행을 강력히 압박했다. 미 정부의 하토야마 총리에 대한 불신은 지난달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과 90분간의 정상회담을 가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하토야마 총리와는 만찬시간에 불과 10분간 대화를 나누면서 "정말 (5월 말까지) 마무리할 수 있느냐"는 불신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또 하나의 단명 총리로 끝나나 = 하토야마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은 미국 오바마 정부에 허황된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지 W. 부시 전 정권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비판하며 들어선 오바마 정부는 동맹국의 입장을 잘 배려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는 관측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 4일 오키나와 방문 시 기자들에게 "(현외 이전 발언은) 당의 공약이 아니라 나 자신이 대표로서 한 (개인적) 발언"이라고 해명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본 언론과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온갖 조롱이 빗발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을 통해 "후텐마 기지이전 문제로 정부가 완전한 교착상태에 처해 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총리의 이 같은 경솔한 발언이 정부에 대한 국민신뢰를 계속 깎아먹고 있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급기야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민주당 간사장까지 지난 7일 "당의 톱(하토야마 총리)을 시작으로 리더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토야마 총리를 압박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하토야마 총리가 이달까지 후텐마 기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사임 촉구의 형태로 반응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포스트 하토야마' 후보들을 거론하면서 일본 정치권 개혁의 최대 수혜자인 하토야마 총리가 전임 자민당 총리들처럼 또 하나의 단명 총리로 끝날 지 주목하고 있다.
줏대없는 총리 등돌리는 국민

자녀수당 지급공약 하루만에 철회등 국민 신뢰 잃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후텐마 공군 기지 이전 문제만도 아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집권 이후 자녀수당 지급과 고속도로 요금 무료화 등의 선거 공약에 대해서도 불분명한 입장을 보이며 급속히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7일 아사히(朝日)신문은 민주당이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내건 '자녀수당 전액(1인당 2만6,000엔) 지급' 시행을 포기하기로 했다가 단 하루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 국민생활연구회는 6일 심각한 정부재정 상황을 감안, 올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현재처럼 자녀수당의 절반(1만3,000엔)만 지급하는 공약을 채택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당에 제출키로 했다. 국민생활연구회는 그러나 이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7일 자녀수당 전액 지급으로 다시 방침을 바꿨다. 신문은 "민주당이 선거 공약에 대해 이처럼 오락가락한 탓에 무능한 정당의 이미지만 굳히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고속도로 요금 무상화를 두고서는 내분을 보이기도 했다.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지난달 21일 한 정책협의에서"(총선에서)고속도로 요금 무료화를 내걸었는데 요금이 올라가는 것은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토교통상이 공약을 변경, 오는 6월부터 요금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공표한 것을 정면으로 겨낭한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원거리 이용자들은 큰 할인혜택을 받게 되지만 일부 단거리 이용자들은 현행 할인제도 폐지로 오히려 더 많은 금액을 부담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번에도 줏대없이 흔들렸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날 오자와 간사장의 말을 듣고 고속도로 요금 상한제를 재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마에하라 교통상은 다음날 총리 관저를 방문한 뒤 기자들에게 "이미 공표한 방안은 수정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하토야마 총리도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친(親)-반 오자와'로 분열된 민주당에서 리더쉽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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