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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표시된 온도는 34도지만 석탄가루와 코크스ㆍ철광석이가 산처럼 쌓여 있는 야적장의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었다.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굉음을 토하는 코크스 분류기 한쪽에 10여명의 인부들이 손으로 일일이 코크스를 분류하고 있었다. 넘치는 코크스 물량에 가격이 떨어지자 조금이라도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크기의 코크스를 골라내 정밀주조용으로 컨테이너에 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이른 아침 까다로운 출입절차를 거쳐 찾은 톈진 남항은 의외로 한적했다. 한창 적철광석을 내리는 부두의 하역장비만 바쁘게 움직일 뿐 다른 장비들은 한쪽에 멈춰 서 있었다. 또 다른 부두에는 안산강철에서 언제 생산한지도 모를 코일과 철근이 녹을 잔뜩 뒤집어쓴 채 쌓여 있었다. 그나마 이날은 밀어내기로 한바탕 물량을 빼낸 다음 한숨 돌린 상태라고 부두 관계자는 말했다. 원자재 수출입을 하고 있는 창칭원 칭저우 에너지수출입 대표는 "남항에서 코크스는 200만톤, 석탄은 1,000만톤 정도를 통상 한 달 정도 야적했지만 지금은 3~4달도 훌쩍 넘어간다"며 "철강제품도 무료 야적기간을 4일에서 20일로 연장했지만 밀어내기를 해도 소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톈진 남항은 중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과잉생산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다. 생산량은 이미 넘쳐나지만 제철소 고로를 멈출 수 없기에 철광석은 계속 수입되고 생산된 철강제품은 팔리지 않은 채 야적장에 쌓여만 가고 있는 것이다.
철강ㆍ시멘트ㆍ화학 등 각종 제품의 과잉생산은 중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밀어내기 식 생산은 국제 가격 하락을 유발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동종업계를 불황의 늪으로 밀어넣고 있다.
과잉생산은 중국의 또 다른 리스크인 지방ㆍ공공부채와 맞닿아 있다. 2008년 이후 지방정부와 국가소유 기업들이 철강ㆍ시멘트 등의 생산을 급속하게 늘렸고 이제는 고스란히 지방부채와 공공부채 증가로 돌아온다. 중국의 지방 및 공공부채의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빗대어 "지방부채와 공공부채의 규모는 중난하이의 최고지도자도 제대로 모른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아직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78% 수준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 부채가 부동산거품과 맞물린다는 점이다. 마이클 페티스 베이징대 경영학대학원 교수는 "과잉ㆍ중복 투자로 상품이 쏟아져나오면서 기업은 물론 지방정부도 돈을 벌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외곽의 옌자오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어난 부동산 붐의 단면을 보여준다. 허베이성이지만 지리적 이점으로 한국의 분당ㆍ일산과 같은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급속도로 개발이 진행됐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옌자오의 성공을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옌자오 아파트의 매매가는 1㎡당 7,000~8,000위안. 100㎡ 기준으로 70만~80만위안(1억3,000만~1억5,000만원)이다. 이 아파트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은 월 1,500~2,000위안 정도로 대출 가능한도인 50만위안을 은행에서 빌린 투자자의 경우 월 이자 3,080위안(대출이자 7월31일 현재 7.4%)도 감당 못한다. 이런 부동산 과열에 기름을 부은 곳이 바로 지방정부다. 경기불황으로 재정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땅을 팔아 빚을 갚기 위해 부동산 개발용지 공급을 계속 늘렸다.
중국 국토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지방정부의 개발토지 공급량은 8만2,400㏊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올 5월까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지방정부가 내놓은 토지구입을 위해 조달한 자금은 4조5,000억위안. 공공부채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이 돈이 어디서 나왔을까. 대부분이 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중국 금융 당국의 속을 썩이는 그림자 금융에서 조달됐다. 부동산거품은 다시 금융권의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이 안고 있는 리스크는 복잡하지만 더 큰 문제는 모두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과잉생산에 따른 재고→지방ㆍ공공부채 부담→부동산거품 유발→금융 리스크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는 중국발 위기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이러한 리스크의 악순환을 걱정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의 개혁정책을 일컫는'리코노믹스(Likonomics)' 출범 이후 1단계 치료가 시작됐다. 리 총리는 지난 4월 부동산 양도세 등 규제강화를 시작으로 대출금리하한선 폐지, 과잉생산 구조조정, 지방부채 전면조사 등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으로 비대해진 중국 경제에 개혁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연 리코노믹스가 중국 경제 리스크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개혁의 강도가 실효성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인가라는 점이다. 철강업종만 보더라도 올해 조강생산량 전망 7억7,000만톤 가운데 보수적으로 잡아도 1억톤이 과잉생산이지만 이번 구조조정으로는 단지 1,000만톤만 감산될 뿐이다.
경기둔화라는 함정도 피해야 한다. 하반기 성장률이 7.3%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 속에 리코노믹스도 개혁의 고삐를 늦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이터는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며 리 총리의 개혁정책이 수정되고 있다"며 "성장과 개혁이라는 전략이 실패할 경우 중국이 또 다른 세계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내 전문가들은 리커창 정부가 하반기에 내놓을 2단계 개혁 조치에 주목하고 있다.
쩌우웨이 우한대 교수는 "경제 둔화가 더욱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독점 업종에 민영자본 유치 확대, 도시화와 판자촌 개ㆍ보수 작업 등 민생개선, 주민소득 제고를 통한 소비 촉진 등과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은 지금 적정한 성장을 유지하면서 비대해진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성장 둔화·빈부 격차 커지자 억눌린 사회 약자 분노 폭발 급격한 사회변화 스트레스… 폭탄테러·칼부림 등 잇따라 공안국가로 불리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 국제공항에서 지난달 20일 사제폭탄이 터졌다.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이 사건은 당초 티베트ㆍ신장의 무장독립단체의 행동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지만 범인은 의외였다. 장애인이 된 농민공 지중싱(34)씨의 억울한 사연을 알리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지씨는 결국 자신의 왼팔을 잃고 폭파죄로 체포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지씨의 행위를 '분노의 폭발'이라고 보도했다. 급속한 성장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가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사회적 약자의 분노는 정부의 통제에 의해 억눌려왔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점차 밖으로 표출되고 있다. 지난 6월 사회복지수당을 타지 못한 분풀이에 4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먼 버스테러나 최근 베이징에서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은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아노미현상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중국 사회학자들은 분석한다. 리코노믹스의 최우선 과제인 '신형도시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농촌주민들은 도시민으로 편입되기 위한 비용부담에 다시 농민공으로 전락하는 좌절을 겪는다. 중국 사회과학원 도시환경발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농촌인구가 도시민이 되기 위해 드는 비용은 1인당 13만위안(약 2,360만원)에 달한다. 급등한 집값을 마련하기 위해 가구당 30만위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1인당 연간 6,977위안에 불과한 농민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신형도시화를 통해 2030년까지 3억9,000만명의 농민을 도시민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필요한 약 51조위안의 재원 마련은 리커창 총리의 고민이다. 도시화의 후유증은 폭력사태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후난성 농민이 시내로 수박을 팔러 나왔다가 도시관리원에게 저울추로 맞아 사망하며 인터넷이 들끓기도 했다. 청관이라 불리는 도시관리공무원은 공안의 위임을 받아 노점상ㆍ주차 등을 단속하며 폭력을 사용해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