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교육열은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의 동력이 됐지만 지금 한국은 학벌만능주의라는 망국병에 걸려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벌만능주의는 고학력 청년실업자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으로 이어져 직업교육의 정체성을 실종시켰으며 이는 세계 최고의 기능 강국이면서도 기능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국가경쟁력의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혁신보다는 재정 지원에만 사활
현재 각 직업교육기관은 학벌만능주의라는 망국병 치유를 위한 각종 직업교육 시스템의 강행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분주하다. 직업교육의 패러다임마저 바꿀 새로운 직업교육 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와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 고학력 청년실업자의 구직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직업교육기관마다 직업교육 정체성의 강점을 키울 개혁과 혁신보다는 일학습병행제·NCS 같은 제도 시행이 주는 재정 지원을 받는 데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일학습병행제는 독일과 스위스를 제조업 강국으로 만든 직업교육의 강점을 지닌 제도다. 또 NCS 기반 교육 시스템도 호주 기술고등교육기관(TAFE)에서 도입해 성공한 제도다. 호주는 기능 올림픽 결과로만 보면 중상위권 수준으로 기능 강국은 아니지만 NCS를 정착시켜 직업교육의 난제를 해결했다. 이처럼 직업교육 강점을 표출케 한 성공적인 제도 정착은 각국의 차별된 교육정서와 국민의식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나라 풍토가 만들어낸 직업교육 시스템의 강점이다.
이런 교육풍토를 간과한 이상론만을 부각시킨 실적 위주의 직업교육 시스템 강행은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숲을 조성하려는 성급한 조림사업이 될 수 있다. 고교 졸업생 10명 중 2~3명만 대학에 진학하는 교육정서와 7명 이상이 진학하는 교육풍토에서는 같은 제도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스위스와 프랑스를 비롯한 기능 선진국의 기능경기대회는 초중고교 학생은 물론 일반인까지 무려 10만여명 이상이 참관한다. 초등학생들은 담임교사의 인솔로 참관수업을 한다. 경기장 주변에서 경기 과정을 일일이 기록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직업에 대한 현장학습으로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교육이다. 이것은 기능 선진국이 된 차별된 직업교육 정서로 능력중심 사회를 실현한 원천 동력이다. 지난 10월 열렸던 제49회 전국기능대회가 학생들과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기능인들만의 행사로 치러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기능경시 풍조가 세계 최고의 기능 강국이 기능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능력존중 교육 풍토부터 조성을
능력중심 사회는 서둘러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차별된 능력중심 사회를 실현할 직업교육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능력의 가치를 존중하고 제대로 대우하는 선진국과 같은 교육풍토 조성이다. 또한 무너진 직업교육의 정체성 회복도 시급하다. 능력중심 사회는 새로운 직업교육 시스템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교육풍토가 조성될 때 실현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