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부조직개편] 공무원 철밥통 깨기 "역시나..."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절차의 민주성을 도모한다며 무려 46억원의 예산과 민간경영진단팀까지 투입, 45만여 국가공무원들을 벌벌 떨게했던 「공포특급」 2차 정부조직 개편이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고 말았다. 호랑이를 그린다며 기염을 토하던 게 불과 몇달 전인데 고양이도 못 그린채 꼬리를 내리고 만 형국이다. 기능위주의 재편에 역점을 뒀다는 정부의 강변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직개편이 온 국민들의 비판에 노출되게 된 것은 비단 의욕에 비해 너무 보잘것 없는 결실 때문만이 아니다. 조직개편 추진주체의 자기모순적 행태가 첫번째 지목대상이며, 이 과정에서 철밥통 공무원의 위력과 공동정권의 한계를 재차 실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 컨설팅기관으로 하여금 국민의 입장에서 부처별 기능과 역할을 객관적으로 평가, 그 결과에 따라 정부 조직을 원점에서 재정비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정부는 또 이같은 절차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역대정권 가운데 사상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는 자랑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정부경영진단팀 및 조정위원회가 부처간 통폐합을 통해 3개부를 줄이는 개편시안을 확정하자 『민간의 의견일 뿐 정부안이 아니다』며 돌연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추태를 보였다. 당초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이 이같이 밝히고 나왔을 때 많은 국민들은 급격한 조직개편에 따라 공직사회 불안을 달래기 위한 「진무성 발언」으로 여겼으나 23일 국무회의 결과 陳위원장의 말은 「농담같은 진담」으로 낙착되고 말았다. 민간인들이 주축이 된 정부경영진단조정위원회는 지난 11일 『정부기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산자·과기·정통부, 보건복지·노동부를 통합하고 해양수산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난 11일 정부에 건의했다. 반면 최종 정부안은 지난해 1차 정부조직 개편때 성사시키지 못한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원회 신설을 제외하곤 하나같이 현행 체제를 유지하는 선으로 대폭 후퇴했다. 당초 기획예산「부」에서 「처」로 된 배경도 기능측면의 배려가 아니라 17부에서 18부로 늘어날 경우 「작은 정부」라는 목표가 말장난에 그칠 것을 염려한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또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 개방형 임용제 도입방침도 결원이 있을 경우 채택하는 쪽으로 뒷걸음질쳤다. 정부의 이같은 행태는 『이번 조직개편안은 기능 중심의 혁신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크게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 2차 정부조직 개편작업 과정이 보여준 또다른 문제점은 소위 「철밥통」공무원들의 부처이기주의와 공동정권의 한계 노출이다. 공무원들은 살아남기위해 민간인까지 내세워 전방위 로비전을 펼쳤고 이는 공동정권의 취약점을 교묘히 자극,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공동정권의 다수 지분측인 국민회의는 당초 당차원에서 마련한 정부조직 개편안중 원안대로 관철된 것은 중앙인사위원회 밖에 없고 나머지 대부분은 소수지분측인 자민련안대로 확정됐다. 내각제 개헌 및 내년 총선과 관련, 자민련과 공무원 조직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때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개혁이라는 대원칙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한 셈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정부조직 개편이 정치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한 데다 공동정권의 대주주인 국민회의가 힘도 못 쓰고 밀리고 만 결과여서 향후 남은 4년여 정권 담당기간동안에도 두고두고 비난거리가 될 것이다. 물론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오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4월 임시국회에 관련 법안이 상정된다. 정부는 법안이 국회서 통과되는 즉시 1주일이내에 관련 시행령을 개정, 이르면 4월중이라도 조직개편을 단행한다는 복안이다. 물론 이같은 일정은 임시국회에서 별다른 여야 대립 또는 「여여 갈등」없이 정부안이 액면 그대로 차질없이 통과된다는 전제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4월은 노사분규의 계절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경제위기를 타개하기위해 가계 근로자 기업 정부가 고통을 분담하자고 입이 아프도록 강조해왔다. 정부의 이같은 당부 덕분인지 그동안 국민들은 실직·임금삭감·도산의 아픔을 이를 악물고 참아 견뎌왔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는 순진한 국민들은 고통을 전담하고 영민한 공무원 조직은 털끝만치도 고통을 나눠갖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아니다. 이제 정부는 아직도 첩첩산중으로 남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떤 교언영색과 견강부회를 끌어다 국민들을 설득할 지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최상길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