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현대그룹 비자금 150억원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해 정치권 등에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이 밝힌 계좌추적의 공식 착수 배경은 수사지연으로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공방만 계속하면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앞으로 새로운 수사팀이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돼, 수사와는 별개로 대검 중수부의 계좌추적팀을 가동했다는 것이다.계좌추적은 지난달 29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등 10명을 출국금지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검찰주변의 해석이다. 수사의 밑그림인 계좌추적을 검찰이 완료할 경우 새 수사팀은 이에 대한 확인작업만 하면 된다. 따라서 검찰의 계좌추적은 사실상 비자금 실체에 대한 본격 수사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검찰은 지난 2월 대북송금 의혹에 대한 특검을 앞두고 정 회장 등을 출금한 적은 있으나 이번처럼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수사를 유보했다. 더구나 차후 국회가 150억원 특검을 의결해 정할 수사범위와,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가 불일치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때문에 검찰이 계좌추적 카드를 꺼낸 것은 수사주체와 범위 등을 논의중인 정치권을 압박하고, 여론을 향해 수사의지를 천명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동안 여권의 구주류 등 정치권은 계좌를 무제한적으로 추적하는 검찰보다는 특검에 맡겨 수사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검찰에 수사를 맡기면 정치자금의 뇌관을 건드려 그 파장이 일파만파를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검찰이 `검은 돈과의 전쟁`을 선포,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 기준을 전에 없이 강화한 대목에 비추어도 이번 검찰의 계좌추적은 정치권의 예민한 반응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에대해 “150억원 수사를 맡겠다는 뜻이 아니며 새로운 수사주체가 나타나면 결과물을 넘겨주겠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비자금을 세탁한 재미사업가 김영완씨 등의 연결계좌까지 추적할 방침으로 알려져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에 앞서 대북송금 특검팀은 2000년 4월8일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정상회담 최종합의 하루 전 현대측 계좌에서 사용처가 불분명한 수백억원 현금이 인출된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팀은 이 가운데 150억원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을 통해 박지원씨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돈이 사채시장 등을 통해 돈세탁을 거친 뒤 정계에 대거 유입된 단서가 될 수 있는 연결계좌까지 접근했다가 수사기간이 종료돼 수사를 접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