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11월 26일] '합의제 정책결정' 문제 많다

"예전에는 일주일이면 될 게 이젠 두 달이 걸립니다." 최근 기자가 만나본 방송통신위원회 공무원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그들의 불만은 이렇다. 정보통신부 시절에는 보고 라인이 담당 과장-국장-실장-차관-장관으로 심플(단순)해 정책결정과 집행이 빠르게 진행됐으나 방통위 출범 이후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상임위원(차관급)들의 논의로 정책결정이 이뤄지는 합의제 구조여서 한 가지 정책이 확정되는 데 이전보다 3~4배의 시간과 절차가 필요해졌다. 정통부 때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4번의 보고로 사안이 마무리됐지만 지금은 위원장을 제외하더라도 4명의 상임위원에게 일일이 알리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모 직원은 한 사안에 대해 각 상임위원에게 5차례씩, 모두 20번의 보고를 하고 나서야 그 안건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경험을 털어놨다. 상임위원마다 입맛(의견)이 다르다 보니 추가자료 요청이 많아 이를 준비하고 설명하는 데 거의 두 달이나 소요됐다고 그는 전했다. 업계에서도 방통위의 '합의제'에 대한 볼멘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요한 정책방향에 대해 상임위원 한 분은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고 다른 상임위원은 저쪽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례가 빈발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주면 업계는 일부 이견이 있더라도 그쪽에 집중할 준비가 돼 있는데 어정쩡한 상태에서 감마저 잡히지 않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탄생 후 정책결정자들이 '규제'에만 무게중심을 두고 '진흥과 육성'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ㆍ신제품이 쏟아져나오는 통신시장은 한 발 앞선 투자와 시장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 빠른 정책결정으로 민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더라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요즘처럼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여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확실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갑론을박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물론 중요한 국가정책 결정에 대해 신속성ㆍ효율성만 강조할 수는 없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 정책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방통위의 합의제는 급변하는 방송통신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규제와 진흥'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제도변화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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