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의 부당진료 실태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의료ㆍ건강서 `여자들이 의사의 부당 의료에 속고있다(문예출판사)`가 번역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저자는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라는 건강서로 명성을 날렸던 미국 로버트 S. 멘델존 박사. 멘델존은 병원장까지 지낸 의료계 중진. 그는 이 책을 통해 산부인과에서 의사의 개인적인 욕심과 오진으로 빚어지는 잘못된 투약과 과잉진료ㆍ불필요한 수술 등 `혹 떼려다가 오히려 혹을 붙이는`격이 되어버리는 진료현장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산부인과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수술과 처치는 환자에게 꼭 필요하다기보다는 의사의 개인적 편의와 돈벌이 수단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은 한국의 여성 의료현장에 대입해 봐도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대표적인 문제점 몇 가지를 들어본다.
◇제왕절개술=응급상황에서 시행되었다면 수술시간대가 고르게 분포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존스 홉킨스병원에서 123건의 분만에 대한 시간대를 조사한 결과 응급 제왕절개수술은 20건이었는데 그 중 16건은 오전8시~오후8시에 시행되었다.
전체 수술 중에서 의사가 집에서 편히 쉬고 싶어하는 밤 12시간 사이 시행된 것은 4건 뿐이었다. 또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한 여성들이 다음번 출산시 자연분만을 해도 모성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번 제왕절개는 영원한 제왕절개수술`이라는 풍조가 관행처럼 남아 있다.
제왕절개수술은 분만 중 마취제 투여로 인해 산모와 아기에게 위험한 상황을 부르거나 산모와 아기의 급격한 심리적 단절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기나 산모 목숨이 위험할 정도가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할 수술이 이처럼 많이 시행되는 이유를 추론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불필요한 검사=자궁암을 예방한다는 미명하에 실시되는 세포진검사ㆍ연례검진ㆍ유방조영술검사ㆍ인후배양검사ㆍ뇌파검사 등 산부인과에서 기본적으로 시행하는 수많은 검사는 아직까지 부정확한데다가 효능이 증명되지 않은 것이 많다.
여기에다 의사들의 부주의한 처리과정으로 오독이라는 문제도 발생한다. 또 뇌파검사(EEG)만으로는 간질을 진단하거나 미미한 뇌 손상을 진단할 수 없는데도 이 기계를 설치한 의사들은 쉬지않고 장비를 가동한다. 캐나다 정기 건강검진 프로젝트팀에서는 일상적인 심전도와 혈액화학검사는 물론, 소변검사조차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피임기구=먹는 피임약은 몸의 기능부전을 유발해 배란을 교란한다. 게다가 모든 세포와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먹는 피임약 사용자는 자궁경부ㆍ유방ㆍ자궁ㆍ간에 암이 생기는 빈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마비와 당뇨병ㆍ고혈압 그리고 우울증을 부르기도 한다. 질 감염이나 유방확대부터 탈모가 되고 얼굴에 털이 자라는 증상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부작용은 수없이 많다.
자궁내 피임기구도 마찬가지다. 이 위험한 장치를 삽입한 여성들 가운데는 급성 골반염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안전하고 신뢰도가 높으면서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페서리나 점액관찰법 같은 수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이런 방법을 권하지 않는 것은 환자의 건강과 삶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방절제술ㆍ누워서 출산하는 자세=암이 생긴 유방과 가슴근육ㆍ겨드랑이의 림프절까지 유방주위 모든 조직을 제거하는 홀스테드식 근치적 유방절제술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 의사의 공격적이 태도를 보여준다.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외관을 손상시키는 수술이나 수술대 위에서 성급하게 잘못 시행된 생체검사 결과 때문에 필요 없는 수술을 받게 되는 환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출산자세도 그렇다. 중력의 법칙에 따라 상식적으로 눕기보다는 앉아서 아기를 낳는 게 더 쉽다. 산모를 분만대에 눕혀 아기를 낳는 자세는 루이 14세의 성도착적인 정신이상에서 비롯되었다.
정부가 분만하는 것을 커튼 뒤에서 바라보면서 성적 자극을 느꼈던 루이 14세는 여성들이 분만의자에 앉는 것을 직접 본 후 자신의 환상과는 다르다는데 대단히 실망했다. 그 후 그는 권력을 이용해 남성 산파가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도록 만들었다.
산모가 높고 반듯한 테이블에 무릎을 세우고 눕게 되자 루이 14세는 그것을 보고 매우 만족해 했다. 다른 의사들은 당연히 왕실에서 하고 있는 방법은 일반인들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반듯하게 누운 자세에서 출산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고 출산은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 되고 말았다.
멘델존 박사는 여성들이 부당한 의료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의사사회의 주류가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애초의 동기였던 순수한 마음을 잃고, 물질적인 것에 치중하게 된 의사들이 권위적인 태도로 여성들을 다루어왔으며 일부 여의사들조차 남성 의사들의 성차별주의적인 의식에 동화되었다는 것이다.
멘델존 박사는 부당한 대접을 말없이 참고 견딜 것이 아니라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대안이 없는지 따져보고, 화를 내고, 항의하고, 오류가 있다면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상당수 의사들이 고의로 환자들을 무시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과격하고 값비싼 처치를 환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상황을 바꿔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사회와 여성들의 할 몫이다.
<박상영기자 sa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