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개혁, 타이밍의 중요성

치과에서 잇몸 수술을 할 때 환부가 여러 곳이면 동시에 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컨대 좌우 위아래 등 4곳이 모두 아플 경우 한번에 한곳씩 손을 대고 이게 아물 때 쯤이면 다른 곳으로 순차적으로 옮겨가며 치료하는 것이다. 환자로서는 치료기간도 오래 걸리고 병원 다니기도 번거로워 단번에 끝내주는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동시수술 경우의 부작용 때문이다. 4곳을 한꺼번에 하면 통증도 훨씬 클 뿐 아니라 외관도 보기 흉하고 일시적으로 말을 하는데도 불편을 겪는다. 그래서 환자의 감당범위를 감안해 차근차근 치료하는 것이다. 가시지않는 시장의 불안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진행중인 국정 각 분야, 특히 재벌개혁에 초점이 맞춰진 경제분야의 개혁 과제와 실천 프로그램 마련작업을 보면서 `잇몸수술의 이치`가 새삼 떠오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업무보고가 시작된 이후의 신문을 들여다보면 숨이 찰 정도다. 재벌그룹 구조조정본부 해체, 상속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및 기업분할명령제, 출자총액제한 강화,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권 강화, 집단소송제, 사외이사제 강화, 주5일 근무제 조기도입 및 산별노조 교섭, 비정규직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등…. 하나같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사안들이다. 물론 이중에는 인수위원 개인의 아이디어인 것도 있다. 일부 사안은 국정과제 토론회를 거치면서 `신중`검토 등으로 다소 누그러졌다. 또 `자율적ㆍ장기적ㆍ점진적 추진`,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는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다. 그래도 시장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개인의 아이디어라지만 그들이 앞으로 대통령의 참모나 정책자문을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언제든지 공론화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들의 의지 또한 단호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인수위 부위원장의 출자총액제한 완화 가능성 발언에 일부위원들이 월권이라며 강력반발한 것은 그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무작정 반대도 옳지않아 개혁의 당위성에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개혁은 국민다수의 요구이자 시대적 대세여서 거스를 수 없게 된 상황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혁의 속도와 강도는 경제의 여건과 현실을 감안해 심사숙고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에 휩싸여 불안하기만하다.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유가는 치솟고 환율은 떨어져 수출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또 내수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은 가운데 가계부실, 신용위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주식시장은 기진맥진하고 있다. 북핵 문제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는 강도높은 조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취해진다면 경제가 어디로 갈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흔히들 개혁은 짧은 기간내에 과감하고 단호하게 추진해야 하며 이것저것 눈치보고 좌고우면하면 개혁은 물건너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제난이 가중되고 장기화돼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면 단기적으로 역풍은 더 커져 개혁의 당위성 자체마저 훼손당하게 된다. 개혁이 경제난의 책임을 온통 뒤집어 쓰고 좌초하는 것이다. 개혁의 주체도, 개혁의 대상으로 꼽히는 쪽도 다같이 잇몸수술의 이치를 새겨봤으면 한다. 개혁 의지는 확고하게 유지하되 속도와 강도는 적절히 조절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물 흐르듯 하는 개혁`이란 이런 것 일게다. 재계도 개혁에 일단 반대부터 하고 보는 자세를 버리고 스스로가 개선해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려 하면 이 역시 더 큰 역풍을 맞게 된다. <이현우(증권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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