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은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안(경징계)에 대해 거부권 행사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최수현(사진) 금감원장의 고민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결정에 불만이 있더라도 KB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징계안을 수용하려 했지만 오히려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수용하는 것이 도리어 '무책임하게' 비쳐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감독기관 수장 자리를 걸고 거부권을 행사해 KB의 썩은 고름을 도려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로 최 원장은 21일에 이뤄진 제재심 결과에 대해 일주일 동안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28일 국민은행의 주요 사항에 대해 제재를 확정하면서도 핵심 관건인 전산 문제는 보류시켰다. 그만큼 장고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 원장은 일단 제재심의 결정안이 현행 감독기준과 양형기준에 어긋난 점이 없는지 내외부 법률 전문가를 통해 따져보고 있다. 법률 검토작업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만큼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법률 검토 결과 경징계 결정이 규정보다 수위가 낮은 것으로 판단되면 거부권을 행사해 두 사람의 징계를 상향 조정할 수 있다.
무엇보다 KB의 내분이 계속되고 여론의 비판 수위가 높아질 경우 원장이 뜻밖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최 원장은 누구보다 여론의 동향에 후각이 발달해 있다. 내분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그냥 경징계 수위를 수용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피감기관의 경영이 엉망이 되는데 감독기관의 수장이 먼 산만 쳐다본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담이 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강공책이다.
그렇다고 원칙만 갖고 '액션'을 취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금감원장의 거부권은 과거 주목 받지 않은 사건에 대해 행사한 경우가 있지만 중요 결정 사안에 대해서는 전례가 없다. 그만큼 제재심의 결과를 뒤집을 경우 원장의 독단적 결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
KB 측의 반발과 소송사태 등 여파가 상당할 수도 있다. 금감원 안팎에서 극히 일부는 원장이 심의 결과를 뒤집고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때문에 금감원 안팎에서 나오는 방안이 이른바 '조건부 징계 수용' 가능성이다.
제재심의 결정을 수용하되 국민은행 주전산시스템 과정에서 드러난 위법행위에 대해 검찰 조사를 의뢰하는 방안이다. 국민은행이 KB지주 최고정보책임자(CIO)인 김재열 전무 등 3명을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고발한 상황이기 때문에 부담도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