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힘모아 다시 뛰자] (4) 대-중소기업은 성장의 동반자

“중소기업 망하면 대기업 당신들도 망한다” 기협중앙회 김용구 자문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생 분업관계에 있다”며 “어제의 중소기업이 오늘의 대기업인만큼 중소기업 없는 대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제조업강국 일본의 도요타는 세계적 자동차메이커다. 이 도요타에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만 무려 4만여개가 넘는다.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도요타 본사 근로자와 똑같은 임금을 받으며 자동차 개발의 튼튼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지난해 7~8월 현대자동차는 임금 삭감없는 주5일제 도입을 놓고 한달여 동안 파업에 시달렸다. 결국 현대차 노사는 임금인상과 주5일제 도입에 합의했지만 파업기간 동안의 손실 수천억원을 울며겨자먹기로 떠안게 된 납품 중소기업들은 또 한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현대자동차와 하청업체의 임금격차가 두배 이상 벌어진 것은 물론 대기업의 임금인상을 위해 혹독한 납품단가 인하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하청업체 존립 위기=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매년 큰 폭의 임금인상 뒤 하청업체들의 납품단가를 깎아 비용상승분을 전가해왔다. 합리적 기준보다는 일률적으로 몇% 내리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납품가를 내리다 보니 중소기업이 가져가야 할 수익까지 고스란히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대해 유창무 중기청장은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로 중소기업들이 채산성이 악화돼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산업의 하부구조인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기는 커녕 `마른수건 쥐어짜기`식의 단가인하 강요는 하청업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이 맘먹고 기술개발과 설비투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통상 3%의 마진만을 보장해주는 대기업의 원가계산방법 때문에 하청업체들은 근근히 먹고 살기 바쁘다. 특히 대-중기 근로자간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추세여서 중소기업의 인력난은 매년 가중되고 있다. 기술력도 약한데다 인력난까지 겹치다 보니 한국의 중소기업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중기 상생체제 시급=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중소기업을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기반 자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소제조업의 붕괴는 결국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강하지 않으면 국민소득 2만 달러와 선진국 진입은 요원하다”며 “대기업은 경쟁력있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적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발주를 안정화시켜주고 납품대금 결제조건 개선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선별ㆍ집중 육성하고,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설비구매 지원은 물론 기술공여ㆍ공동개발ㆍ장기계약 등의 지원책을 실시할 것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삼성그룹은 350여개 협력업체에 시설투자자금 8,75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등 향후 5년간 모두 1조원을 지원키로 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은 사출ㆍ프레스ㆍ금형ㆍ전기ㆍ기구 등 집중 육성이 필요한 5개업종을 지원대상으로 정하고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지원책을 펼치기로 했다. 이에대해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지원이 더욱 확산돼 일본처럼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동반자로 발전해야 한다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끌어주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밀어주는 진정한 의미의 상생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中企현장 애로사항 적극 경청을" 기협중앙회 이용표 사업상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호 협력 관계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필수 요건입니다.” 이용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상무 는 “최근 세계 시장에서 경쟁은 개별기업간 경쟁에서 시스템간의 경쟁으로 옮겨오고 있는 만큼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과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의 상호협력 관계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협중앙회가 최근 실시한 `수탁기업체협의회 운영실태 조사`에 따르면 자동차ㆍ전자ㆍ전기ㆍ기계 등 32개 대기업들이 1만6,399개 중소기업과 하도급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 3차 하도급 협력업체까지 감안할 경우 10만여개 이상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ㆍ중소기업간 관계는 대부분 단순 하청 계열관계인 전속적ㆍ수직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 실제로 43.3%의 납품업체가 대기업의 일방적 단가인하 요구를 가장 큰 불공정 거래유형으로 지적하고 있는 등 병폐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 상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동번영을 위한 협력관계는 대기업이 기술ㆍ자금ㆍ인력ㆍ판매 등 중소 기업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애로들을 적극 경청하고 `상생의 정신`으로 문제 해결에 나설 때 양자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납품 대금지급 현금결제 유도" 전경련 이규황 전무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상극(相克)이 아닌 상생(相生)의 관계입니다.” 이규황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뒷받침이 없어서는 힘들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전경련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등과 상시 대화채널을 통해 대기업-중소기업 협력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 전무는 대기업-중소기업의 협력과 관련, ▲기술개발 ▲파이낸싱(금융) 지원 ▲마케팅 지원 ▲인력 순환 등의 부문에서 보다 적극적인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납품가격을 합리적으로 매겨주고, 대금결재를 어음이 아닌 현금으로 하도록 유도하면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기업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인력을 공급하는 일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 및 마케팅 협력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앞선 기술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대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있고, 해외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중기는 대기업에 든든한 우군이 됩니다.” 이 전무는 대기업-중기 협력의 이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대-중소기업 협력 국내외 모범사례] 相生관계 확산추세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들의 대립관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두터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공존공생의 길을 모색하는 기업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장품을 생산, 생산자자체설계(ODM)방식으로 중견기업에 납품하는 한국콜마는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고 있으며 탄탄한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대형 제약사와도 공급계약을 맺는 등 대ㆍ중기 협력 성공사례로 꼽힌다. 한국콜마의 기술력이 뛰어난 만큼 대기업은 연구개발과 생산을 모두 한국콜마에 맡기고 납품단가 인하, 장기어음결제 등도 요구하지 않는다. 여러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면서도 특정회사의 화장품 제조기술을 다른 기업에 공개하지 않는 신용으로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전자, 자동차, 중공업 등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 결제요건 완화, 인력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부터 전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대금지급방식을 기업구매카드 결제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이에 따라 중소 협력업체들은 어음할인료를 2% 가량 줄이고 어음분할 인출도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ㆍ기아차도 중소 협력업체의 기술지원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2002년 100억원 이상을 출연해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을 설립했으며 신차 개발 초기에 협력사가 공동으로 설계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업중앙회 김영수 회장은 “그동안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강제로 인하하고 물품대금결제를 장기어음으로 끊어주는 등 상하관계로 유지해 왔으며 중소기업은 울며겨자먹기로 대기업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며 “앞으로는 대립의 시대를 접고 상생의 시대로 거듭나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벤처기업협회 장흥순 회장은 “국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참여 비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일본의 경우 자본참여 비중이 11%를 넘어서는 등 대ㆍ중기 협력이 강하다”며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선별해 설비구매 지원, 기술공동개발, 현금결제 확대 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중소기업 협력 국내외 모범사례] 日 차업계 승승장구 중소기업이 `다수의 약자`에서 `활력 있는 다수(vital majority)`로 바뀌면서 세계 각국은 중소기업의 역할을 극대화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제고에 애를 쓰고 있다. 실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끈끈한 협력 관계로 유명한 일본 도요타자동차나 혼다의 경우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으며 닛산자동차도 역대 최고 수준의 영업 이익을 거뒀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일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전후(戰後) 일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 문제로 각종 갈등을 빚었으나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의 구조고도화와 대기업의 계열화가 추진되면서 현재의 높은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자동차 부품 산업의 경우 대기업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전문화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며 직접 설계를 담당하는 업체도 70%를 넘고 있다. 이는 장기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협력, 기술개발과 비용절감 노력을 해 온 결과물인데 일본의 부품업체들은 신차 개발에 처음부터 참여해 해당 부품의 개발과 설계를 직접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다케이 히데토시 일본자동차공업회 참사는 “처음에는 일본 부품업체들도 완성차업체에 종속적인 관계였지만 점차 공동 개발하는 관계로 변해갔다”며 “완성차업체들이 가끔 `기술력 있는 부품업체들이 두렵다`고 반은 농담조로 말한다”고 전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모범적인 협력관계는 이탈리아 패션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15년 동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탈리아의 패션산업은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추격으로 한 때 곤경에 처하기도 했으나 중소기업들이 각 분야에서 전문화, 고부가가치화, 네트워크화해 어려움을 극복해 냈다. 대기업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두기업으로서 핵심 기능만 수행하면서 필요한 자원을 중소기업으로부터 아웃소싱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중소기업은 집적과 네트워크로 생산공동체를 형성,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세계적인 패션업체인 베네통사도 자체적인 생산 비율을 최대한 낮추고 대신 우수한 중소기업을 적극 발굴, 외부에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다. <이규진기자, 정민정기자,서정명기자 sk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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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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