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비리' 개념조차 모르는 법원

이재철 기자 <사회부>

“인사상 문제는 알았으나 비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지가 ‘정실인사’를 일삼다 사임한 N모 법정관리인을 재선임한 사건을 취재할 당시 보인 법원의 반응이다. 지난 2002년 N씨가 법정관리 기업 A사에서 사임할 당시 A사 관할 법원에서 관련 업무를 하던 한 법관은 기자에게 시종일관 “N씨의 비리는 없었다”는 주장만 폈다. 즉, 자신의 아들 둘을 법원의 허락도 없이 고액의 연봉으로 국내외 기업연구소 등에 취업시킨 N씨의 행위는 ‘비리’가 아니라 ‘문제’ 수준이라는 것. “금전비리는 비리고 인사비리는 비리도 아니냐”는 질문에 시종일관 이 법관은 “비리가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법과 정의를 앞세워 하루에도 수백, 수천건의 범법행위를 판단하는 법원이 설마 ‘인사비리’는 ‘비리’ 축에도 못 낀다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법원은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는 곳이다. 최근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공판중심주의 원칙을 천명한 것도 더욱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N씨의 사임이 인사비리와 상관없는 N씨의 자진사임이었는지, 비리 사실을 확인한 법원의 명령이었는지’에 대해 법원은 이미 오래전 지난 이야기인데 지금에 와서 확인해줄 수 없다며 끝끝내 진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본지 보도로 밝혀진 비리 법정관리인 재선임 사건의 핵심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이는 최소한의 ‘원칙’에 관한 문제다. 쓰러져가는 회사를 관리ㆍ감독할 수 있는 절대적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그만큼 법원이 고도의 정직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응하는 도덕성을 갖춘 인사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것 역시 법원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는 법원의 태도는 분명 ‘낙제점’ 수준이다. 법원이 진실규명과 제도개선보다는 당장 자신의 치부를 감추는 데만 급급하다면 국민들 눈에는 이보다 더 큰 ‘비리’는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법원은 법정관리인 선임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관리시스템 정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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