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사진) 전 서울대 총장은 30일 "가뜩이나 (경제에) 거품이 끼여 있는 시점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 거품을 더욱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미국 금융위기와 한국 경제의 대응'을 주제로 한 한국미래소비자포럼 강연에서 "현시점에서 정부가 자본확충, 부실자산 매입 등의 방식으로 은행들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하지만 그외 단기 경기부양책은 소용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현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왜곡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들었다. 그는 "금융기관들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 가계에 '묻지 마 대출'을 해줬고 대출자금을 마련하려고 은행채를 발행하거나 해외에서 단기차입했다. 정부도 금융시장 국제화를 위해 규제를 마구 풀었던 것이 문제를 일으켰다"고 진단했다. 정 전 총장은 현 위기를 타개할 해법으로 시장주의 탈피, 중소기업 육성, 의료ㆍ교육 투자 등을 꼽았다. 그는 "우리 경제가 잘되려면 세계 흐름에 맞춰 그동안의 시장주의ㆍ탈규제정책에서 다소 물러서야 하고 굉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과거와 같이 수출 대기업이 잘되면 내수 중소기업도 잘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총장은 이어 "중장기적으로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연구개발(R&D)ㆍ관광ㆍ의료ㆍ교육 등에 투자해 고용을 창출하는 한편 생산성을 높이는 등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해외에서 한국 기업들의 1ㆍ4분기 실적을 거론하며 대단하다고 평가한 것과 관련해 정 전 총장은 "투자처가 너무 없어 한국에라도 오려고 띄워주려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상 우리 경제는 상당히 어렵다"며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 경제팀이 신뢰와 리더십을 확보하는 것이므로 관료들이 함부로 경제나 주식시장 전망을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며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