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CEO/케드콤 김영수회장] 시대흐름 뚫는 감각으로 고비돌파

김영수(57)회장은 스스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76년 케드콤의 전신인 한국전장을 설립한 이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해 전체 외형 1억5,000만달러를 바라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기 때문이다.『운이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는것은 지난날 고비때마다 내린 결단들이 자칫 수렁에 빠질뻔한 회사를 한단계씩 비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 결단은 일찍부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었고 다음은 반월공단으로의 이전이었다. 金회장 스스로 『그때 나가지 않았으면 부도났을것』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특히 93년의 중국현지법인 설립은 오늘의 케드콤을 있게한 동력이 됐다. 그러나 金회장을 잘 아는 사람은 단순히 「운좋은 사람」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金회장에게도 끊임없는 위기가 닥쳤으며 이를 극복한 것은 시대흐름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감각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金회장에게는 요즘 젊은 벤처기업가에게서 느낄 수 있는 발빠르고 톡톡튀는 모습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30년 가까운 연륜에서 다져진 무게감과 엔지니어출신 기업인 특유의 고집을 느낄 수 있다. 묵직하지만 시대흐름에 반걸음정도 앞서가는 감각이 성공을 일군 비결인 셈이다. 합정동에서 초라한 규모의 공장을 가동하고 있던 시절. 金회장은 당시 일본에 있던 코닥공장의 한국이전을 제의받고 관계자들의 공장견학을 주선했던 적이 있었다. 다락방규모의 공장을 둘러본 코닥본사 관계자들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고 코닥공장 유치는 실패로 돌아갔다. 코닥유치 실패후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金회장은 또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세계적인 컴퓨터사인 애플사에서 제의가 들어온것. 金회장은 반월공단으로의 이전을 조건으로 제휴를 추진하게 됐다. 그러나 반월공단 현지에 문의해본 결과 이미 공단분양이 모두 끝난상태. 직접 공단책임자를 방문해 떼를 썼다. 그러나 당장 남은 땅이 없는상태라 일단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낙담한 상태에 있던 金회장에게 뜻밖의 희소식이 날라온 것은 한달후.『당장 현금 3,000만원을 들고 2시간안에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 다행히 부지를 매입하기로 한 업체중 하나가 포기하고 말아 그땅을 분양받을 수 있었다.반월공단 이전은 이렇게 어렵게 성사됐다. 이때부터 케드콤은 눈부신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또 한번의 고비는 90년대초에 찾아왔다. 당시 노동집약산업에 가깝던 전자부품생산이 인건비의 상승으로 고비를 맞았다. 인근 시화공단에 부지까지 확보했던 金회장은 중국으로의 공장이전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몸집줄이기를 대대적으로 추진했고 수출위주업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톈진(天津)공장 설립은 5년후 국내업체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부상한 구조조정문제까지 사전에 해결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기업들의 중국진출 붐이 일면서 주요 납품처였던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바로 옆으로 이전하면서 판로걱정을 안해도 되는 행운까지 잡았다. 다른 사람보다 반걸음정도 앞서는 행보가 가져온 행운이었던 셈이다. 현재 케드콤이 거래하고 있는 업체는 20여곳에 달한다. 여기에는 IBM, 애플, 휴렛팩커드, 소니, ITT 등 세계굴지의 회사들과 삼성, LG, 대우 등이 포함된다. 첨단 통신기기 장비인 디지털·아날로그 셋톱박스를 비롯, 전동타자기 프린터 금전등록기와 커넥터와 앰프등을 생산하고 있는 이 회사는 세계곳곳에 포진한 네트워크 판매망을 통해 세계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金회장이 최근들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회사는 한국IST. 연구개발에만 전념하는 정보통신관련 전문 엔지니어링회사다. 金회장은 IST를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몰아친 지난 97년 12월 인수했다. 견실한 경영으로 일관해온 金회장은 IMF한파에도 불구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었고 이를 활용, 미래 성장성은 있으나 자금사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 회사를 기꺼이 인수했다. 이렇게 인수한 IST는 올 하반기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 金회장에게 다시한번 짭짤한 수익을 제공할 전망이다. 金회장의 안목과 뚝심을 드러내는 또하나의 사례는 남보다 빠른 북한진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 앞에서 자랑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金회장이지만 이 부분을 이야기할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金회장은 전자조합이사장 자격으로 북한진출을 끊임없이 타진했고 이러한 노력은 대동강가에 전자단지 건립이라는 결실을 이뤄냈다. 동해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어수선했던 때였지만 金회장 일행이 북한을 방문했을때 보여준 북한의 환대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리무진 제공은 물론 최고급 수준의 호텔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머물렀다. 전자조합의 임가공사업은 규모는 작지만 지금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민간차원의 대북경협사업 중 유일하게 성공한 것으로 꼽힐정도. 더구나 현대의 금강산 관광까지 중단된 상황이라 전자조합의 대북 임가공 사업은 더욱 돋보인다. 金회장은 다만 과도한 물류비 부담으로 소수의 업체만이 참여하고 있는데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인건비 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싼 수준인데다 어떠한 제품이라도 원하는데로 만들어낸다』는게 金회장의 설명. 그러나 남북간의 협의로 제3국의 배가 남포-인천간을 왕래하게 됐고 운송되는 물량이 적어 물류비용이 거리에 비해 엄청나게 높게 책정된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경협의 이점에 비해 참가업체수가 적은것이 이런 이유때문이다. 이에 대해 金회장은 정부당국의 결단이 아쉽다고 말한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지원되는 각종 지원방식을 남북경협사업에 적용할수도 있지 않냐는 생각이다. /정맹호 기자 MHJE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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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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