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사람이 있고 괜스레 불편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전자에 가까웠다. 서울말과 전라도 말의 묘한 조합이 돋보이는 정감 어린 말투, 연신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는 따뜻함, 느릿느릿 그러나 가식 없이 풀어놓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마주하는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영화 '아부의 왕'에 출연한 배우 송새벽(32·사진)을 만났다. 3년 전 영화'마더'의 단역 '세팍타크로 형사'로 충무로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해결사''방자전''시라노;연애 조작단'에서 감초 연기를 선보이며 조금씩 존재감을 높여 나갔다. 은근한 어눌함, 특유의 말투가 돋보이는 송새벽이 이번엔 융통성 제로인 순수남 '동식'으로 분했다. 고지식한 기획팀 직원에서 영업직으로 내몰린 그는 엎친 데 덮친 격, 어머니 사채까지 떠 안게 된다. 이 때부터 혀 고수(성동일)로부터 아부 기술을 전수 받기 위한 그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영화 속 동식은 우유부단하고 융통성 없고 뭔가 부족함이 있는 캐릭터죠. 그런 동식이 혀 고수를 만나고 예지(한채아·동식의 첫 사랑)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 되요. 그 과정이 어딘가 모르게 저와 닮아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동식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송새벽은 장르적으로 코미디인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시시때때로 짠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동식의 아버지는 늘 자기 고집대로 올곧게 살아가는 분이세요. 그러나 동식의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사랑하는 여자도 떠나 보내야 하고, 살겠다고 회장의 신발 끈을 무릎을 꿇은 채 묶어줘야 해요. 남자들 호주머니에 돈 없으면 괜히 쓸쓸하고 기죽고 그렇잖아요. 저도 한 때 그런 것들을 경험해 봤고…. 동식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참 가슴 아프더라고요. 코미디 영화지만 촬영할 때는 괜히 눈물이 핑 돌고 짠 했어요."
영화는 어찌 보면 하루 하루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수많은 샐러리맨들을 위한 위로 영화 같은 느낌이다. 송새벽은 영화를 보고"(뭇 사람들이) 마음 속에 꿍 하고 쌓아놓은 것들을 확 터뜨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날 때부터 답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주변 여건 때문에 괜히 위축되는 거죠. 영화를 보고 그런 소심함을 훌훌 털어 버렸으면 좋겠어요. 용기도 얻으시고요."
천성적으로는 아부에 능하지 않다는 송새벽은 자신을 '심심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표현했다.
"부모님이 늘'물 흐르듯 살라'고 말씀하세요. 저도 동글동글, 무던하게 사는 게 좋고 또 어느 순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속도 편하고."(웃음)
화려한 색보다 무채색이 더 어울리는 배우 송새벽, 즐겨 마신다는 주(酒)종에도 그의 수더분하고 소박한 모습이 배어 있었다.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공허해지면 면이 있더라고요. 송새벽보다 영화나 연극 속 캐릭터로 사는 시간도 만만찮으니까요. 그럴 땐 막걸리로 공허함을 달래요."(웃음)
이제 막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그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직 달리기에 벅차다"는 송새벽은 그렇게 끝까지 진중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답하겠다"는 그의 가식 없는 답변에 괜히 송새벽의 몇 년 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