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연속극과 시대심성

살인 강도 강간 등 온갖 불법과 폭력 무질서에 시달리면 사회는 조건 반사를 일으킨다. 여론의 세찬 비난압력이 일어나고 이를 배경으로 공권력이 강하게 발동된다 그러나 공권력은 법과 질서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에 신사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폭력적 요소가 드러나면 여론은 방향을 바꾼다. 폭력은 다스리되 폭력을 수단으로 해서는 안된다며 공권력을 비난의 표적으로 삼는다. 표면은 여론이라고 하지만 공권력의 폭력을 문제삼는 쪽은 지식층이다. 허가 받은 폭력의 울타리 속에서 더 큰 악이 자라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울분에 찬 시민들은 제3의 힘을 떠올린다. 저 무질서 불법 부조리를 혁파할 정의의 사자는 없는가. 로빈 훗이 등장하고 홍길동이 나타나고 드디어 초현대식 무기를 들고 람보가 상상의 세계 속에 등장한다. 목적이 좋으면 수단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악의 무리들이 한 칼에 베어지고 총탄에 쓰러질 때 통쾌함을 느낀다. '총 한 자루만 있었으면.'하고 분노를 표출하지만 그건 불법이다. 폭력이 폭력을 부를 것은 뻔한 이치다. 그래서 고금 동서를 초월하여 선량한 민초들은 이야기나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한다. 요즘 안방극장에서<야인시대>라는 연속극이 인기라고 한다. 이른바 협객세계에서 일생을 보낸 김두한씨의 이야기가 기둥 줄거리다. 치고 받고 굴복시키되 의리를 지킨다는 정도가 극의 메시지이다. 이 연속극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가 내놓은 일련의 히트 상품들은<친구>를 비롯해서 예의 조폭물들이었다. 이 현상을 두고 사회심성이 그런 산물을 요구할 만큼 황폐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인기 연속극을 두고 거창하게 시대심성까지 논하는데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폭력물에 시청자가 공전의 시청률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좀 생각해 볼일이다. 이 연속극은 뒷골목 세계의 권력 질서 의리가 바탕이다. 폭력의 요소만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정치권력의 세계를 연상시킬 수 있다. 현실 정치 세계는 지금 '두목 자리 따먹기'로 단순화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게임이 아주 저질스럽고 치사해서 '한 방'으로 해결하는 뒷골목 정치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치사하지 않은 게임 말이다. 여기에 하나 더, 싸워서 이윽고 성취하는 경쟁력이라는 메시지가 있다. 싸움판을 흥행물로 만든 미국 프로 레슬링의 링에는 항시 악역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상은 오직 경쟁력이다. 누가 실력이 있는가 그걸로 인기가 판가름 나고 있다. 손광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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