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부터 발효되는 중국의 반독점법은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에 새로운 ‘게임의 룰’을 세울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중국 반독점법은 표면적으로 시장의 공정한 경쟁규칙을 강조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외자기업들을 견제하고 자국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적지 않아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한 반독점법의 규정 가운데는 모호한 대목이 많아 중국 당국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높은 가운데 삼성전자ㆍLG전자ㆍ현대자동차ㆍ두산인프라코어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반독점법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KOTRA와 업계에 따르면 총 8장 57개조로 구성된 중국 반독점법의 시행으로 중국에 진출한 4만여개 국내 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법 위반에 따른 과징금 규모가 매출액의 최하 1%로 초대형 기업은 자칫 수천억원대 제재를 받을 수 있어 현지 진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시장 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31.2%)와 LG전자(18.7%)의 휴대전화와 삼성전자가 독주하는 LCD모니터, 두산인프라코어(22.8%)가 점유율이 높은 건설기계 등이 반독점법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이 D램 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로 과징금을 받을 경우 D램 부문 글로벌 매출이 과징금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중국의 반독점법이 중앙 및 지방정부가 해외 또는 중국 내 다른 지역의 상품반입에 대한 기술, 제품검사, 수수료 표준업무 등에 있어 차별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은 우리 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베이징 사무소장은 “중국의 반독점법 시행으로 우리 대기업들이 중국기업을 M&A(인수합병)하는 일이 매우 까다로워졌다”면서 “아울러 현대차의 경우 판매점의 독점판매를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마케팅전략을 바꿔야 하는 불편이 생기는 등 몇 가지 변화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반독점법은 각종 예외 조항을 통해 자국기업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최소화하고 있어 외국의 다국적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중국의 석유, 철도, 통신, 항공 등 주요 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국유기업들이 이번에 시행되는 반독점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 중국 국유기업들 사이에서는 “반독점법 시행으로 오히려 국유기업들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해석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반독점법에서 ‘사회공공이익’에 부합될 경우 독점협의와 경영자 집중이 허가된다는 단서조항이 있다”며 “‘사회공공이익’이라는 모호한 개념규정은 다국적기업에게는 날카로운 칼날이 될 수도 있으나, 국유기업에게는 예외적용 될 수 있어 ‘이중 잣대’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외자기업들은 “반독점법은 자신들을 차별하는 법”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외자기업들 사이에서는 반독점법의 실시 이후 다국적기업이 우위를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 시스템, 카메라, 프린터업종 등을 위주로 경쟁구도 재편이 빠르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독점법의 첫 희생양으로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풍문이 파다하다. 경쟁사인 AMD에 의해 끊임없이 시장지위를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인텔도 중국의 반독점법을 피할 수 없을 듯하고, 중국의 무균팩 시장에서 절대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테트라팩도 반독점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테트라팩은 1979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2003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이미 80% 이상에 달했다. 이밖에 BHP 빌리턴의 경우 중국 철강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리오틴토 인수안이 반독점법의 첫 번째 안건이 될 것으로 관측되며, 화이자는 지린(吉林)천약유한공사의 인수안이 반독점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번에 시행되는 중국의 반독점법은 가격고정, 생산(판매)량 제한, 시장할당, 신기술 및 신장비 도입 제한, 공동의 거래거절 등을 독점협의(담합)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중국법이 규정한 시장지배적 지위요건은 ▲1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2분의1 이상 ▲2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3분의2 이상 ▲3개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4분의3 이상이다. 또 외국기업이 중국에서 M&A를 할 때 해당 사업자의 전세계 매출액이 90억위안(약 1조1,700억원)을 초과하고, 그 중 2개 사업자의 중국내 매출액이 3억위안을 넘을 경우 사전에 신고하도록 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와 관련, 반독점법은 ▲부당하게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래를 거절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는 끼워팔기 및 불합리한 거래조건 부과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배타적 거래를 강요하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가격 또는 거래조건을 차별하는 행위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착취하는 행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반독점법을 위반한 기업이 제재 감면 조치를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중요한 증거 사항을 제시해야 하며, 기업이 중국 당국의 조치에 불복해 소송을 낼 수 있지만 기업결합의 경우 소송 전에 행정 재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 법이 금지하고 있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행위에 대한 규정에서 ‘부당하게 높거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하는 행위’ 등 일부 문구는 해석의 여지가 커 법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반면, 법률 위반 때 전년 매출액의 1~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불법 이익을 몰수하는 등 처벌조항 강력하다. KOTRA 상하이무역관의 김윤희 과장은 “반독점법 실시로 중국 시장의 마케팅 환경과 경쟁 법칙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리 기업들은 앞으로 나올 관련 규정과 실시세칙을 포함한 각종 제도변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