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최근 채권은행의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을 보조금으로 규정해 D램 수출에 대해 33~57%의 높은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높은 상계관세가 부과되면 D램 수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관세율 만큼 수출가격이 높아져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상계관세란 정부 보조금을 배경으로 기업이 보다 싼 값에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있다고 판정을 내렸을 때 수입국이 부과하는 관세다. 보통 보조금을 기준으로 관세율이 결정되기 때문에 상계관세가 부과되면 보조금 지급에 따른 경쟁력 제고 효과는 무력화된다.
정부 보조금은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지원해 육성하는 중요한 경제정책수단이다. 일부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경제개발, 수출촉진, 수입대체 등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반면 이 같은 지원은 자원배분의 왜곡을 가져와 시장 기능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은 산업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보조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하는 반면 개도국들은 산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보조금에 대해 긍정적이다.
◇보조금은 특정 산업ㆍ기업을 대상으로 한 금전적 혜택=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및 상계관세 부과에 관한 협정`에 따르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 가운데
▲재정적 기여
▲혜택 부여
▲특정 대상에 대한 혜택(특정성) 등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보조금으로 간주된다.
여기에서 재정적 기여는 무상지원, 대출, 출자, 대출증가 등 직접적인 자금 제공과 함께 세액공제 등 간접적인 지원을 가리킨다. 또 혜택은 `지원을 받은 기업이 시장에서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때 지불해야 할 비용을 초과하는 부분`으로 규정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특정 기업의 주식을 시장 가격보다 높은 값에 사줄 경우 그 차액이 바로 `혜택`으로 간주된다.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을 시장가치 이하의 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혜택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지분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출자전환은 바로 채권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돼 보조금으로 판정될 수 있다. 미국이나 EU가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보조금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배경때문이다.
WTO는 모든 보조금을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특정성`이 있는 보조금만을 불공정 무역행위로 규정한다. 특정성이란 정부의 보조금이 일부 기업이나 산업으로 국한될 경우를 가리킨다. 단 법률 등을 통해 보조금 수혜자격이나 금액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과 조건을 명문화되어 있을 경우 특정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서비스나 기초연구개발 등에 대한 보조금은 허용=WTO 규정에 따르면 보조금은 금지ㆍ상계가능ㆍ허용 보조금 등 세가지로 나뉜다. 금지보조금은 당장 철폐 또는 폐지되어야 하는 보조금을 가리킨다. 수출 또는 수입대체 보조금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WTO 회원국은 금지보조금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거나 즉시 WTO에 제소할 수 있다.
상계가능 보조금은 교역상대국이 영업손실 보전, 직접적인 채무감면 등 무상지원을 통해 특정 산업 또는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수입국의 국내산업에 피해를 주었다고 판정할 때 부과된다. 미국이나 EU는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채권단의 지원이 순수한 상업적 판단이 아니라 정부가 출자한 은행을 통해 지원한 것으로 간주했다.
WTO 체제 아래서 허용되는 보조금도 있다. 일단 정부 보조금이 특정 산업이나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닐 경우 다른 WTO 회원국은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또 상품이 아닌 서비스, 연구개발, 지역개발, 환경 보조금 등은 허용된다.
◇보조금에 해당되는 만큼 관세 부과=WTO 회원국 기업들은 외국으로부터 직ㆍ간접적인 보조금을 얻은 물품이 수입되면서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경우 정부에 상계관세 부과에 필요한 조사를 신청할 수 있다. 회원국 정부는 기업이 상계관세 부과에 필요한 조사신청서를 제출하면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한 후 보조금 지급사실 및 산업피해유무를 구분해 조사를 진행한다. 서면 및 공공기관 자료를 토대로 예비조사를 벌인 결과 피해가 발생했다고 판정을 내릴 경우 본조사에 들어간다. 본조사는 현지 실사 및 검증, 공청회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계관세는 보통 보조금 지급 규모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보조금을 산정하는 방식은 보조금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지분참여의 경우 통상적인 투자와 해당지분과의 차액을, 대출의 경우에는 시장금리와 실제 대출금리와의 차이에 따른 이자부담규모를 보조금으로 계산한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