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부실 저축銀 부실 청문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화려한 캐스팅(증인)으로 관객몰이에 나섰던 쇼(청문회)는 기대 이하로 판정이 났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국회에서 진행된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규명 및 대책마련을 위한 청문회'는 말 그대로 저축은행 부실화 원인을 규명해 책임소재를 가려 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여야 국회의원과 증인들의 발언은 취지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정치 공방에 치우쳤다. 시종일관 저축은행 부실 책임이 현 정권에 있느냐, 전 정권에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부실 청문회였다. 저축은행 부실은 누구 한 명의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이거니와 정책∙감독 당국의 근시안적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을 따진다면 청문회에 소환된 증인이나 국회의원도 모두 서로에게 큰소리칠 입장은 아니었다. 특히 이헌재 전 장관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전∙현직 장관과 금융당국 수장들이 34명이나 증인으로 나섰지만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었다"나 "당시 국회에서 요구하고 승인하지 않았냐"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이 공허하게 되돌아올 뿐이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야당 의원은 현 정권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했고 여당 의원은 전 정부가 부실을 조장했다는 식의 항변만 되풀이했다. 청문회장에는 책임규명과 대책마련에 대한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 혈안인 정치권과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금융당국 수장뿐이었다.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등장한 대책반장이나 금융 종결자를 자처한 이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그들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고 싶은 말을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문회 말미에 출연한 저축은행 피해고객의 절규는 선명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는 법이 없다. 금융위∙금감원∙국회의원∙감사가 제대로 처신했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겠냐"는 내용이다. 심지어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세금 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정치공방과 책임 회피로 일관된 청문회이지만 참석자들이 이들의 절규를 귀담아 들었다면 이번 청문회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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