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문재인·안철수 다 못 믿어" 직격탄
[추석 민심따라 대선 판세 들썩] 지역·세대별 지지성향 미묘한 변화… "텃밭도 장담 못한다"
정치팀 종합
서울·수도권 예측불허… 安 찬반 논란 늘어
PK지역 '우리가 남이가'정서 예전만 못해
광주·호남도 지역주의 색깔 과거보다 희석
"인물만 있지 정책 실종" 우려엔 한 목소리
올 추석의 화두는 역시 12월 대선이었다. 가족ㆍ친지, 친구ㆍ선후배가 모여 앉은 자리마다 앞으로 5년을 이끌어갈 적임자가 누구냐를 두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아직까지는 쉽사리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형국이지만 지역별ㆍ세대별로 미묘한 변화가 눈에 띈다. 여야의 텃밭인 영호남에서 과거에 비해 지역주의적 사고가 크게 약해진 반면 노년, 청ㆍ장년층에서 각각 여야로 기울어져 있던 지지 성향도 함부로 예견할 수 없을 만한 변화가 감지됐다.
◇서울, 수도권 안갯속… 안철수 후보의 찬반 논란 분분=역대 대선과 마찬가지로 서울ㆍ수도권 민심은 승부의 향방을 결정 지을 핵심 변수다. 대선이 불과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까지 서울ㆍ수도권 민심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세 후보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단 비교적 최근까지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쏠려 있던 민심은 추석 전후 몰아친 검증 공세 탓인지 안 후보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유권자가 부쩍 늘었다.
중소기업 임원으로 서울 마포에 거주하는 김모(61)씨는 안 후보를 두고 "대선을 코앞에 둔 아직까지 대통령이 되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말이 없다"며 회의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만날 돌아다니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소리만 한다"며 "공약을 내놓지 않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 후보의 국정운영 능력에 대해 의문을 품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안 후보의 절대 지지층이었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경기 김포시에 거주하는 30대 회사원 최모씨는 "안 후보를 가장 좋아했는데 출마할 때까지 이랬다 저랬다 하고 요즘에 부모님이 안 후보를 안 좋게 얘기하니 나도 거기에 쏠린다"고 했다.
반면 최근 안 후보에게 쏠리고 있는 검증에 대해서는 '너무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최모(58)씨는 "안 후보가 룸살롱에 갔다고 공격하는 것을 들었을 때 본인이 안 갔다고 한 것도 아니고 너무 자잘해서 검증이 아니라 네거티브 같다"며 "그 이후의 안 후보 검증도 중대한 결격사유가 되는 게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인천에 거주하는 공기업 직원 서모(41)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공기업 임금을 깎고 현실과 맞지 않는 실적을 요구했다"면서 "다음 대선에는 안철수ㆍ문재인 후보가 단일화하면 그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반면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엇갈렸다.
최근 박 후보의 역사관 논란에 대해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허모(25)씨는 "인혁당 사건에 대해 몰랐는데 하도 논란이 되니까 그때서야 들여다보게 됐다"면서 "내용 자체보다 사과하라는데 끝까지 고집부리는 모습이 좋지 않게 보였다"고 전했다.
문 후보에 대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핵심 참모로 활동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비리가 없었던 것에서 비롯된 청렴한 이미지는 강점으로, 참여정부에서의 실정 문제는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을 지지했다는 홍모(서울 마포 거주ㆍ59)씨는 "문 후보가 진정성은 있어 보인다"라면서 "개인 비리도 없고 사람이 깔끔하다"고 했다. 반면 박모(61세)는 "문 후보는 참여정부 당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일이 생길 때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부산ㆍ경남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아=부산ㆍ경남(PK) 지역은 '여당 텃밭 지역 아성 지키기'냐 '이 지역 출신의 야권 후보(안철수ㆍ문재인)를 밀어주느냐'가 격돌 중이다. 새누리당에 대해 예전과는 사뭇 다른 PK 민심이 확인되는 가운데 박 후보에 대한 지지세도 만만치 않아 이번 대선에서의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이번 추석을 통해 확인해본 민심은 최근의 경제민주화 등 정책 이슈보다는 인물 위주의 정치 선거 흐름이 강하게 풍겼다.
부산에 사는 50대의 한 주부는 "안철수고, 문재인이고 정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지 않나"라며 "저축은행 문제 등에서 이명박 정부가 너무 못한 것은 맞는데 그래도 박근혜가 결국은 잘하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울산에서 회사를 다니는 김병수(54)씨는 "문ㆍ안 후보의 경우 정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물 검증이 필요하지만 박 후보는 수년간 정치를 하면서 검증을 마친 상태"라며 "아킬레스건이었던 과거사 발언을 잘 정리해 박 후보의 지지율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4ㆍ11총선에서 보듯 새누리당을 향한 PK 지역의 '우리가 남이가' 정서는 예전만 못하다는 게 이번 추석 민심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모(29)씨는 "회사에서 내가 속한 팀은 안철수 아니면 문재인 후보로 통일됐다. 박 후보를 찍을 생각이 없더라"라며 "안 후보 검증 문제도 그렇다. 할 줄 아는 게 네거티브밖에 없나"라고 비판했다.
◇호남, 지역주의 성향 크게 희석=PK와 정서적 거리감이 가장 먼 광주ㆍ호남도 지역주의적 성향이 과거보다 많이 희석됐다는 점에서는 PK 지역과 비슷하다. 특히 국민의 정부 이래 계속돼온 '호남 소외론'에 대한 서운함이 지역 민심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전북 익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유모(59)씨는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말했으면 싶은 게 '그동안 핍박만 당해왔던 호남 지역을 왜 안 챙겨줬냐'는 거다"라며 "문 후보도 간판만 민주당이지, 영남 사람 아니냐"라고 했다.
단, 이 같은 정서가 곧 박 후보 지지로 연결되느냐 하는 문제는 다르다. 새누리당에 대한 불신은 이 지역에서의 근본적 거부감과 더불어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겹쳐 있다. 이 지역에서의 안 후보 지지율이 다른 곳보다 높은 것은 민주당에서 느끼는 서운함과 새누리당을 향한 불신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를 지지한다는 광주의 한 50대 택시기사는 "정권 교체를 위한 전략적 판단 운운하지만 깨끗한 사람, 새 정치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디다"라며 "(안 후보의 다운계약서 작성 등은) 그딴 건 나도 했던 것이다. 지들(새누리당)은 그보다 더 한 짓들도 숱하게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반면 안 후보의 '정치 경험 부재'에 대한 우려는 호남에서도 걸리는 대목이다.
전주에 사는 지민우(33)씨는 안 후보를 두고 "조그마한 코스닥 회사 잘 키우고 좋은 말만 하고 다녀 젊은 층 지지를 얻은 게 다 된 게 아니다. 정치는 회사 경영이나 강의와 다르지 않나"라고 했다.
민주당 전통 텃밭으로서의 문 후보 강세도 확인됐다. 단, 문 후보가 다자 경쟁에서 박 후보에 계속 뒤지는 결과를 보여온 만큼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목포에 사는 진모(37)씨는 "안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되면 누구든 찍을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민주당이라는 수권 세력이 뒤를 받치고 있는 문 후보가 좀 더 믿음직스러워 보인다"고 했다.
◇인물선거에 정책경쟁 실종 우려에는 한목소리=지역을 불문하고 최근의 정책 경쟁 실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3명의 유력 후보가 모두 정책 대결을 다짐하고 있지만 경쟁을 할 만한 정책 자체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해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송모(27)씨는 "세 후보 모두 국정 운영 능력을 확신할 수 없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때 일했다는 것 빼고는 잘 모르겠고 안 후보는 너무 완벽한 척을 해 더 믿음이 안 간다"며 "지금껏 가장 오랫동안 준비했다고 하는 박 후보도 눈에 띄는 공약이 없다는 점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네거티브' 선전전이 예년처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추석 민심을 통해 드러났다.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과거사 논란이나 안철수 후보를 향한 각종 의혹 제기 등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는 이들이 많았다.
PK 지역에서 약사를 하는 권성민(52)씨는 "나이 드신 분들은 박근혜씨에 대해 불쌍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부모 없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라며 "요즘 들어 과거 일로 공격하는 민주당 사람들 때문에 힘들겠다고 걱정들을 많이 한다. 미워도, 잘못해도 내 새끼라는 말이 이 지역 민심"이라고 전했다.
안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에 대해 자영업자인 안지태(37)씨는 "오히려 새누리당의 구태의연한 정치나 민주당의 일부 지역 바라기 정치는 이제 신물이 난다"며 "이미지로만 본다면 안 후보가 가장 깨끗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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