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세계화의 덫

박인구 <동원F&B 대표이사>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불어닥친 경제의 세계화, 즉 글로벌리제이션의 파도는 처음에는 그 뜻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소했으나 이제는 우리에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세계 무역의 자유화로 인해 각종 무역장벽은 제거돼가고 관세율은 낮아지고 있다. 특정 국가에 민감한 품목, 예를 들면 한국의 쌀과 같은 품목은 이번에도 향후 10년간 관세화 유예조치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공산품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만들어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국제간의 교역은 각국이 가진 비교우위에 입각해서 더 적은 코스트로 품질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그렇지 못한 제품은 수입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당장은 비교우위가 없더라도 외국제품의 수입을 일정기간 막고 그 기간 동안에 유치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WTO 체제가 자리잡은 현재에 있어서는 각국이 유치산업을 보호ㆍ육성할 시간도 장치도 많지 않다. 더구나 정보화의 진전으로 완전경쟁시장의 조건인 정보의 완전한 소통이 이뤄지는 현 상황에서는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어느 제품이 가장 좋고 저렴한지를 소비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관련산업의 육성을 위한 방안을 해보기도 전에 시장은 다른 나라의 제품에 점령당하기 일쑤다. 이와 같이 각종 무역장벽이 제거돼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이 분리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저율관세와 운임 같은 요소는 시장가격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결국 상품은 인건비ㆍ재료비ㆍ경비 등 여러 요소가격과 기술 등의 제반여건이 우수한 곳에서 그렇지 못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선진국은 자본ㆍ기술이 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하고 개발도상국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발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세계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진전은 개도국과 선진국의 격차를 고착화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확대시켜나간다. 기업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확대되고 개인간에도 정보화 격차, 지식 격차는 벌어진다. WTO 각료회의가 있을 때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시위는 세계화가 빈부를 고착화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선진국들의 개도국에 대한 원조가 빈부 격차를 메워주기 위해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는 있으나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세계화는 재화와 용역의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경쟁력 있는 선진국에는 자유화의 혜택을 가져다 주지만 개도국에는 세계화의 덫에 갇혀 빈곤의 영구화를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선진국은 개도국에 대한 유예기간의 설정이나 우대조치 등을 더욱 확대함으로써 세계화에 따르는 부작용이 세계화의 장점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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