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의 풍향계로 가늠되는 뉴햄프셔주 경선은 '힐러리 대세론'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인구는 120만명에 불과하지만 역대 대선에서 비당원을 포함한 프라이머리(proimary)가 가장 먼저 치러진다는 점에서 "뉴 햄프셔의 승리자가 곧 미 대선의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아 온 뉴햄프셔는 8일(현지시간) 아이오와 첫경선에서 실패한 힐러리 진영의 선거운동에 극적인 승리를 안겨 주었다.
지금까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1위를 놓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는 1992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2000년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 뿐이었다.
이번 승리는 힐러리 입장에서는 지난 이틀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 이상의 표차로 경쟁자인 버락 오바마에게 참패할 것으로 예상된 시점에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값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때 힐러리 진영세서는 곧 중도사퇴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이번 승리로 올 연말(11월 4일) 본선에 나갈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 지를 결정하는 전당대회(8월25일)까지 힐러리와 오바마간에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접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힐러리가 이번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극적인 승기를 잡은 것은 전략의 대변화에서 찾는 시각이 많다. 40대의 젊음과 참신함을 무기로 '희망과 변화'의 전도사로 나선 오바마의 '진정성'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전환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힐러리는 "오바마는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실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거짓된 것"이라며 "오바마는 미국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일깨워준 마틴 루터 킹, 젊음과 패기, 참신함으로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는 다르다"고 정면 비판했다.
아울러 너무 똑똑하고 냉담하고 이지적인 이미지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주었던 점을 의식,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한 것도 이번 뉴햄프셔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힐러리는 7일 뉴햄프셔 포츠머스의 한 카페에서 부동층 유권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쉽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렸었다.
여기에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이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면 결국 공화당에 패배할 것"이라며 '본선 경쟁력'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먹힌 것으로 지적됐다.
힐러리 의원은 경선 승리의 대반전을 이룬 8일 밤 지지자들의 모임에 참석, "오늘 밤 가슴이 벅차다"며 "뉴햄프셔가 나에게 안겨준 만회처럼 미국을 되살리자"고 호소해 환호를 받았다.
힐러리는 그 동안 변화를 앞세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선거전에 말려 고전했음을 의식한 듯, "뉴햄프셔에 와서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내 스스로의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말하고 "내일도 일어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한편 오바마는 이날 패배가 확정된 뒤 기자회견을 통해 힐러리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터졌다"면서 "그러나 지금 미국에선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정치판의 '변화'를 거듭 역설했다.
힐러리에게 예기치 못한 일격을 당한 오바마는 오는 2월 5일 있을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 '변화'를 바라는 젊은층과 무당파 유권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다시 한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