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생활상 맞춰 선택 지혜를”/시내·시외전화 곧 추가탄생… 무선데이터도 4월부터/할인·배터리 무료공급·즉석 통화 등 고객혜택 쏟아져/“이젠 마음에 안들면 가입거부” 가능국내 통신서비스시장에서 이용자들이 서비스품질과 요금결정의 키를 쥐게 되는 「소비자주권시대」가 오고 있다. 경쟁이 확대되고 다양한 서비스상품이 쏟아져 나오면 품질향상에 게으른 사업자, 과도한 이윤을 내는 사업자는 도태된다. 이용자에게 다른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값싸게 공급하겠다는 사업자가 줄을 서는게 경쟁시장환경인 것이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사업권을 획득한 개인휴대통신(PCS) 등 분야의 27개 사업자가 속속 서비스 개시에 들어가게 돼 있어 통신서비스 소비자주권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편집자주>
중소 무역업체의 중견사원 박모씨(37)는 요즘 고민이 한가지가 생겼다.
박씨는 3년전부터 마이카(My Car)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엔 결혼 10년만에 어렵사리 마이홈(My Home)도 장만했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올들어선 마이폰(My Phone) 즉 이동전화 생각이 났다. 딱히 남들이 휴대폰을 갖고 있는 폼이 그럴싸해서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즉시 통화하고 싶은 「통신의 본능」이 그를 꿈틀거리게 만든 것이다.
박씨를 고민스럽게 하는 것은 쏟아져 나오는 통신서비스중 무엇을 고를까 하는 문제다. 같은 종류의 서비스라도 여러 회사들이 있다는데 어디에 가입해야할지도 꽤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전화는 알겠는데 새로 나온다는 발신전용휴대전화(CT2)·개인휴대통신(PCS)·주파수공용통신(TRS) 따위는 솔직히 뭐가 뭔지 그는 모른다.
더구나 지난해 가을만해도 단말기를 포함, 1백만원이 넘던 이동전화비용이 겨울이 오자 할인판매를 한다며 갑자기 30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오는 2월엔 20만원대의 CT2가 나오고 올가을엔 이동전화의 반값이면서 통화품질 좋다는 PCS가 나온다고 해 헷갈릴 지경이다.
요즘 주변에는 박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띈다. 얼마전만 해도 이동전화에 가입하려면 한국이동통신이라는 독점기업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백만원이 넘는 단말기를 사야 했고 가입비만해도 도합 70여만원에 달해 휴대폰 이용자는 서민의 눈에 선민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경쟁도입으로 지금은 가입자가 1천만명이 넘는 무선호출기(삐삐)도 93년까지는 독점서비스였다. 시외전화도 지난해 비로소 경쟁이 시작되기 전까진 한국통신이 독점해 왔다.
독점시장에는 상점도 별로 없고 상품도 하나밖에 없다. 주인은 손님이 오든말든 아랑곳하지 않게 마련이다. 아쉬운게 손님이다. 사업자가 「서비스 개선」을 말로만 외치고 이용자를 무시해도 달리 대안이 없었다.
그렇듯 독점기엔 이용자와 사업자가 불공정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비자들이 정신 못차릴 만큼 많은 서비스상품과 사업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선택의 홍수」에 파묻혀 있는 상황이다.
이동전화는 이미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 두군데가 떠들썩하게 손님잡기, 손님뺏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올 10월엔 한국통신프리텔과 LG텔레콤, 한솔PCS가 이동전화와 유사한 PCS사업을 시작한다. 발신만 되는 이동전화 CT2는 한국통신·서울이동통신·나래이동통신 등 무려 11개 사업자가 2월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 군용 무전기와 이동전화의 중간형태쯤 되는 TRS는 기존사업자 한국TRS가 구축한 아성에 7월부터 아남텔레콤과 서울TRS 등 6개 신규사업자가 도전한다. 무선으로 데이터를 보내고 무선PC통신도 가능케 하는 무선데이터통신도 한컴텔레콤·에어미디어·인테크텔레콤 등 3사가 4월께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
무선호출 수도권에는 5월부터 해피텔레콤까지 서비스에 들어가 무려 4개 사업자가 한 지역에서 경합을 벌일 양상이다.
여기에 상반기중 제2시내전화사업자가 선정되면 이웃집에 전화할 때도 이용할 전화회사를 선택해야 한다. 시외전화회사는 올해 한개가 더 생긴다.
고요하던 통신시장이 어느날 갑자기 통신백화점으로 변모하면서 늘어난 상점과 손님으로 북적대는 풍경이 벌이지고 있다.
데이콤이 지난해 「082」식별번호로 시외전화사업을 시작하자 한국통신 전화국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데이콤사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외전화를 싸게 걸 수 있는 장비를 무료로 설치해준다는데 한국통신 전화국직원들이 예전처럼 앉아서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돈내고 이용하면서 불만이 있어도 참아야 했던 통신서비스 이용자들이 이제야 비로소 「소비자주권」을 찾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한국이동통신은 최근 휴대폰 배터리를 무료로 충전할 수 있는 시설을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백화점 등에 설치했다. 이 회사는 가입자가 단말기를 잃어버렸을 경우 찾아주고 심지어는 이를 전액 보상해주는 보험까지 대신 들어주기도 한다. 신세기통신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연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할인판매를 단행,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들은 또 앞서거니 뒤서거니 요금인하를 실시하고 로열요금제·비즈니스요금제 등 다양한 선택요금상품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과거 아쉬운 사람이 찾아와 서비스에 가입하고, 통신품질이 썩 좋지 않으면서도 비싼 요금은 꼬박꼬박 내야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통신사업자들이 달라졌다.
한술 더 떠 LG텔레콤같은 회사는 이용자들이 편의점 LG25·LG전자대리점·LG정유주유소에서도 PCS에 가입하고 가입하자마자 즉시 휴대폰포장을 뜯어 통화할 수 있게 하는 유통전략을 세우고 있다. 「원스톱쇼핑」, 「즉석 통화」라는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요즘 사업자들은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서비스 경쟁시대, 백화점시대에는 사업자들이 온힘을 다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다할 수 밖에 없다.
소비자는 「왕」이다. 물건이 마음에 안들면 다른데서 사면 되고 그것도 마음에 안들면 아예 다른 상품을 사면 된다. 소비자들은 서비스가 안좋은 상품은 철저히 외면함으로써 사업자들이 서비스를 개선케 하고 극단적으로는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주도권이 소비자에게 돌아온 것이다.<이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