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포템킨 빌리지와 푸틴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지난 1787년 배를 타고 드네프르 강을 따라 새로 합병한 크림 반도 시찰에 나섰다. 그 지역을 총괄하던 그레고리 포템킨 장군은 빈곤하고 누추한 마을 모습을 감추기 위해 강변에 영화 세트 같은 가짜 마을을 급조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에서 사람들은 웃고 노래하며 행복에 겨워 일하고 있었다. 포템킨은 여제의 배가 지나가면 세트를 해체해 다음 시찰 지역에 또 다른 세트를 만들었다. 당연히 여제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풍년가'가 울려 퍼졌다. 이때 이후'포템킨 빌리지'라는 정치용어가 생겨났다. 실제의 추한 모습과 딴판인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 조작하는 것, 즉 현실 호도를 비유하는 의미로 말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최근 장기집권을 꿈꾸는 푸틴 총리에 대해 '포템킨 인기'에 빠져들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러시아의 현 실상과는 전혀 다른 호도된 인기에 현혹된 푸틴 총리가 장기집권을 꿈꾸며 '21세기 차르'를 노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탓인지 4일 치러진 러시아 두마 의원선거에서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이 과반석 확보에 실패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러시아 국민들이 여당의 장기 집권과 푸틴의 무모한 야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외신들은 러시아 국민은 부패 관료를 옹호하고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에 신경 쓰지 않는 집권여당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관측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지금 러시아에서는 유권자들의 정치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젊은 유권자 층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는 푸틴 총리가 '성난 젊은 세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거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러시아의 정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푸틴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더욱 하락할 것이다.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는 한국 등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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