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김숭웅 휴먼칼럼] 파이터와 사냥꾼

파이어 파이터라는 영어 단어에는 매력이 넘친다. 불과 싸우는 사람. 말 뜻 그대로 소방수다. 흔히 소방수를 지칭하는 통상적인 단어 파이어맨보다 얼마나 상쾌하고 윤택한가. 불을 상대로 싸우는 전사!단어 한마디 속에 그 직업의 명분과 목표, 가치가 일목요연하게 포함돼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싸워야 할 적은 오직 불이다. 소방대원은 단지 불을 진압하기 위해서일 뿐 소방대장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장 한 사람을 향해 수백의 사원과 그 가족들이 목을 거는 불건너 속세의 추태와는 무관한 직업이다. 혹시 검찰 또는 경찰관한테 크라임 파이터(CRIME FIGHTER)라는 말이 쓰이나 싶어 사전을 찾았지만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파이어 파이터. 한마디로 윤곽이 분명한 단어다. 또 그 단어에 가장 잘 부합되는 직업이다. 내가 좋아하는 직업군의 하나다. 좋아하는 또 하나의 직업에 군인이 있다. 파이어 파이터처럼 목표의 시작과 끝이 분명한 직업이다. 오직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일 뿐 혼히들 생각하듯 별계급장을 따내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 결코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이면 됐지, 임진왜란 당시 그의 상관인 병조판서가 누구였나를 따지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그런데도 이순신보다 병조판서 되기에만 눈독을 들이다. 이 점에서 내 눈에는 파이어 파이터한테 한 수 눌리는 직업이다. 대신 파이어 파이터 한테서 찾을 수 없는 묘미가 하나 있다. 적수를 갖는다는 점이다. 특히 기량과 전술이 비슷한 호적수일 경우 그들의 주업인 전쟁은 자칫 예술차원으로까지 격상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롬멜과 미국의 아이젠하워가 그 좋은 예다. 둘은 똑같이 엄격하고 고전적인 독일계 부모에게서 태어나 심한 경우 아버지로부터 체형까지 받고 자란다. 롬멜은 1차대전중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빠른 속도로 진급한다. 그의 상관인 연대장이 34년 롬멜대대장을 평한 기록에 따르면 『일반 보병 대대장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가장 뛰어난 대대장』으로 나타나 있다. 이에 비해 아이젠하워는 1차대전중 훈련소 소장이라는 한직을 받아 한 때는 영영 재기하지 못할 불운한 군인으로 까지 평가받는다. 그러나 롬멜이 승승장구하던 34년 아이젠하워가 소속한 부대의 참모장 맥아더가 아이젠하워에 대해 평한 기록은 『미국 육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교로 다음번 전쟁이 터질 경우 기필코 미국 육군의 최고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고 되어 있다. 44년6월6일 둘은 드디어 노르망디에서 맞붙는다.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잔전을 롬멜은 정확히 예상했다. 그러나 당시 히틀러의 지나친 의심과 일선 사단장까지를 직접 관장하려는 독재자 「중간책 거부」 기질에 회생돼 그의 일선지휘권은 박탈되고 본부대기 발령을 받는다. 연합군의 상륙 작전이 시작되기 8개월전에야 겨우 서부유럽 전술사령관으로 복귀하나 그나마 그 지역 야전사령관 룬트스테트 원수지휘하에 배속된다. 서부유럽 해안을 손바닥 뒤지듯 살핀 롬멜은 연합군이 해안상륙을 감행하리라는 것, 그리고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노르망디까지 족집게처럼 지목해 냈으나 상관 룬트스테트는 연합군의 공세가 유럽내지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우기며 롬멜의 해안배치작전을 무효화시킨다. 공격이 시작된 D데이는 하필이면 롬멜의 아내 루시의 생일이기도 했다. 치밀하기가 바늘끝 같아 「사막의 여우」소리를 듣던 롬멜이 아내에게 파리제 구두를 선물하기 위해 진지를 이탈한 것이다. 군인은 한마디로 이런 로망이 주어진 직업이다. 그러나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직업은 사냥꾼이다. 나의 근성,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인의 기질에 가장 근접한 것이 사냥꾼 기질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제 비디오 아티스토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세계인」 백남준씨를 파리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인의 기질은 농부, 일본인은 어부, 한국인은 사냥꾼이다』고.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내가 새해로 만 30년 치른 신문기자직은 그러고 보면 사냥꾼이라는 직업에 가장 근접했던 직업처럼 생각들 때가 많다. 한마디로 「도시의 사냥꾼」. 북구라파의 왕녀 오드리 헵번이 도시의 사냥꾼 그레고리 펙에게 사로잡히는 영화 「로마의 휴일」처럼 나의 지난 30년은 매일 매일이 휴일처럼 즐겁고 신났다. 원고지 메우는 일에 단 한번 실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 새해를 맞아 대학으로 일터를 옮긴다. 거기서 날 닮은 사냥꾼들을 자꾸 자꾸 키워낼 생각이다.<우석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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