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가 3일(현지시간) 발표한 로드맵에 따르면 당장 공석이 된 대통령 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이 과도정부의 수반을 맡아 전문관료 내각을 꾸리게 된다. 지난해 12월 거센 반발 속에 무르시 정권이 통과시킨 이슬람주의 성향의 현행 헌법은 효력이 정지되며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헌법개정 작업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드맵에는 또 헌법재판소 관리하에 대선과 총선을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치른다는 계획도 담겨 있다. 현재 차기 이집트 대권을 잡을 가장 유력한 인물로는 이번 군사개입을 주도한 압델 파타 알시시(53) 국방장관이 꼽힌다. 그러나 이미 시민혁명을 경험한 이집트와 국제사회가 군 출신 인사의 재집권을 꺼릴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집트의 새로운 권력자로 떠오르는 알시시 장관은 군대에 권력을 돌려주는 일 없이 현재의 위기를 끝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야권을 이끈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역시 유력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엘바라데이가 높은 대외적 인지도와는 달리 일반 대중의 인기가 부족하다는 점을 약점으로 꼽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 대선에서 무르시 전 대통령과 박빙의 승부를 벌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측근 아흐메드 샤피크(71) 전 총리, 아므르 무사(77) 전 아랍연맹 사무총장, 공군장교 출신 정치인 함딘 사바히(72) 등도 대선주자로 거론된다.
그러나 군부가 제시한 이 같은 정권출범 일정이 계획대로 시행될지는 불투명하다. 무슬림형제단 등 무르시의 지지세력이 군부개입을 쿠데타로 규정하며 강력한 저항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CNN은 "무르시의 축출이 시위와 폭력사태의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이슬람 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무슬림형제단이 군부에 대대적인 저항을 시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지난달 30일부터 현재까지 반정부시위대와 무르시 지지세력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사망자가 39명에 달한 가운데 유혈충돌과 그로 인한 정국혼란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텔레그래프 역시 "무슬림형제단은 이미 수많은 이슬람 테러조직의 원천이 돼왔다"면서 향후 정권이양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 휘하조직의 테러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에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집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보류한다고 선언하는 등 국제사회가 군부개입에 대한 지지를 꺼리는 것도 과도정부와 군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연간 15억달러 규모의 군사경제원조 제공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IMF 역시 무르시 정부가 요청한 48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에 대해 "향후 사태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며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지원중단으로 이집트 경제가 한층 악화할 경우 군부에 대한 반발여론이 거세지며 정국혼란이 한층 가중될 수 있다.
한편 이집트 군에 억류돼 있는 무르시 전 대통령의 거취는 아직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집트 군 고위관계자를 인용해 "무르시가 앞으로 반대파에 정식 기소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무르시는 군부에 의해 실각, 억류된 후에도 페이스북 계정 등을 통해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