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올해 물가는 잡았다지만(사설)

올해 소비자물가가 지난해말 대비 4.5% 상승에 그쳐 억제 목표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켰다. 국제수지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성장률이 7%대 이하로 하강한 가운데 물가만이라도 잡혔다고 하니 우울한 연말에 그나마 다행이다.정부의 올해 경제성적표 중 오직 물가만 합격점을 받아 물가당국이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자랑거리로 내세울 것이 못된다. 정책의 성공이라기보다 전적으로 날씨의 도움으로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물가상승을 주도한 것은 공공요금과 기름가격의 상승이다. 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좌지우지하는 품목이다. 반면 물가안정에 기여한 품목은 농산물과 채소류다. 여름 태풍, 홍수, 가뭄 피해가 거의 없어 농작물이 풍작을 이뤘고 겨울들어서도 날씨가 따뜻해서 채소류 작황도 좋았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물가를 올리고 날씨가 대신 물가를 끌어내린 결과다. 여기에 물가당국의 행정력과 압력 등 자율정책을 후퇴시킨 인위적 지도가 주효했던 것이다. 더욱 자찬거리가 될 수 없는 점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철석같이 약속했던 신경제의 3% 내외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또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이 이미 3% 이하의 안정기반을 다지고 인플레와는 결별한지 오래인 점에 비춰보면 선진국은 아직 거리가 멀었다. 특히 지수물가가 안정되었다고 하나 전세, 쌀값, 시내버스료, 대학등록금 등으로 대표되는 체감물가는 큰 폭으로 뛰어 서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지수물가도 올해는 그럭저럭 지켜졌지만 내년 사정은 그렇지 못해 걱정이다. 민간연구소는 말할 것 없고 국책연구기관들까지도 낮게는 4.7%, 높게는 5.2% 이상으로 예측하고 있을 정도다. 내년 대선이 큰 악재다. 대선을 의식해서 부양책 유혹이 큰데다가 행정력으로 억눌러온 개인서비스요금과 각종 공산품가격이 선거시즌에 돌입하면서 뛰어오를 것이다. 여기에 올해의 유가인상과 환율상승 파급효과가 본격적으로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임도 분명하다. 땅값 등 부동산 가격도 벌써 꿈틀거리고 있다. 올해 효자노릇을 했던 농산물도 내년에는 해거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원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안심할 수 없다. 해외요인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이같은 상황에선 심리적인 요인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안정의지와 정책선택이 중요하다. 믿을 구석은 대선을 의식하지 않는 경제논리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치논리에는 완연히 「노」할 수 있는 의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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