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탕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변화
블렌딩 기법은 제차 과정에서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통 혼합 조제한다는 의미의 병배(倂配)는 제차 과정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됐는데요. 대개 찻잎의 풍미를 유지하거나 품질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여러 종류의 찻잎을 일정한 비율에 따라 섞어 차를 만들었죠. 찻잎의 종류만이 아니라, 지역과 산지 혹은 계절과 연도 등 시간과 공간이 서로 다른 찻잎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흑차를 대표하는 보이차에서 병배 기법은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오룡차나 홍차 제작에서도 병배 기법은 자주 사용됐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블렌딩 기법은 향과 맛을 강조하거나, 약효를 강조하는 기법들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화차(花茶)가 등장하고 보건과 양생을 위해 약차(藥茶)가 등장 유행했던 것이죠. 사회적으로 상품화되면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한 상황이 생기겠지만,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더 진행될 것입니다. 음식이 변하는 것처럼 말이죠.
음식의 변화는 차보다 훨씬 심한 편입니다. 최근 음식 관련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높습니다. 인기도 인기이거니와 사회적인 여러 이슈들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요리(料理)와 조리(調理)의 차원이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의 밥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아울러 거기에 쓰이는 재료들과 조미료 등은 사회적 이해관계가 다른 기업과 전문직 종사자들마저 얽히게 만들지요. 기름과 소금과 쌀 등등 살림에 필수품이었던 재료들이 다른 입장으로 불려 나오고, 현대판 조미료들이 채널에 따라 얼굴을 달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 허무주의도 등장합니다.
오행으로 나눈 차의 갈래는 차의 기초에 해당합니다. 현실에서 유통되는 차의 모습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과 건물들처럼, 다양한 제품으로 있습니다. 차 제품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기계를 사용하고, 병배(倂配) 즉 블렌딩을 통해서 변화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제차 과정에서 기계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예전과 달리 수 많은 사람들이 차를 즐길 수 있게 되었죠. 기계 사용과 관련해서 문제가 된다면 기계로 차를 말리고서 햇빛에 말렸다고 하는 것과 같은 변칙들입니다.
뿌리가 중요한 것은 그 위로 무수한 잎과 꽃과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바탕이 튼튼하면 그 위에 수많은 변화가 가능하겠지요. 바탕이 있으면 안정된 진화가 가능하고, 바탕이 없으면 수 없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요. 오룡차, 홍차, 보이차, 녹차 등 차 갈래에서 세계적인 명차로 불리는 차들은, 차다운 바탕을 지키면서 매 시대 사회적 상황과 장단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화차(花茶)의 유행
바탕과 어울리는 것이 어려울 때, 편중(偏重)되는 방식으로 차가 개발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진 차가 더 유행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도 넓은 의미에서 차라고 할 수 있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재가공차(再加工茶)라 부릅니다.
화차(花茶, Scented tea)가 있습니다. 화차는 앞서 살핀 반(半) 발효차와 관계가 깊습니다. 찻잎은 제차 과정을 거치면서 수분과 엽록소를 상실하고, 공기 중에서 산화라는 화학변화를 거치면서 성분과 향미(香味) 모두 변해 갑니다. 가볍게 발효된 차는 꽃 향이 최고조에 달하고, 무겁게 발효하는 차는 꽃 향이 과일 향으로 변해갑니다. 이 변화 진행에 맞추어 발효를 조절 정지하는 차가 중간 발효차였습니다. 이 제작과정에 향의 종류와 농도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서 화차가 등장합니다.
화차는 식물의 꽃이나 잎 혹은 열매를 이용해 재가공한 차의 일종입니다. 찻잎이 다른 향미를 잘 흡수한다는 특징을 활용한 것인데요. 신선한 꽃과 찻잎을 같은 용기에 밀폐해 두고 훈증 등 일정한 제차 공정을 거칩니다. 시간이 지나 꽃의 향미가 찻잎에 스며들면, 마른 꽃잎은 골라내는데 이때 남은 원래의 차는 더욱 농익은 향미와 깊은 탕색을 띠게 됩니다.
녹차와 홍차, 오룡차 모두 화차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함께 사용하는 원료와 훈증 방식에 따라 화차의 품종은 달라집니다. 말리화차, 옥란화차, 계화화차, 주란화 등이 있고, 이 가운데 청나라 때 복건성에서 생산된 말리화차, 즉 자스민(jasmine)차가 생산과 소비에서 화차를 대표합니다.
전통적인 화차 개념은 이처럼 차와 꽃을 블렌딩해서 제작했던 것인데요. 시장에서 유통되는 말린 꽃이나 꽃봉오리를 이용해 그대로 마시는 화초차(花草茶)의 경우는 재가공차라 불리진 않습니다. 가령, 국화차와 백합차 혹은 장미차 등의 경우입니다.
화차는 차가 지닌 효과와 더불어 꽃 향을 겸비하고, 여기에 독특한 약리작용을 갖추면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숙변과 독소 배출 및 위장 조절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본초강목>이나 근대의학에서도 밝히고 있는 부분이죠. 다만, 화차는 중정(中正)의 차가 아닌 편중(偏重)의 차라는 것, 따라서 조절해서 마실 필요가 있습니다.
#약차(藥茶)와 보건차(保健茶)의 유행
동서양의 차에 대한 연구는 차를 널리 쓰이게 하는 배경이 됩니다. 찻잎은 최초에 해독 등 약재로 사용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종의 생활 음료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차가 약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되면서, 차는 차 자체로 쓰일 뿐만이 아니라 보건 음료로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는 중국만이 아닌 한국과 일본, 유럽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환구시보>라는 중국신문은 올해 봄에 독일의 한 민간조사기구(알렌바흐)의 조사 결과를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독일 가정 95%가 약차를 상비하고 있다는 것과 독일병원에서 우울증이나 과민반응에 이런 약차를 처방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이런 약차 산업이 2차 대전 이후 독일정부의 승인으로 점차 발전했다는 것, 특히 자연요법과 음차문화의 결합으로 최근 10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중국에서 약차 분야의 발전은 두드러집니다. 약차를 나누는 분류도 여러 갈래가 되는데요. 몇 가지 예를 들면, 건미감비류(健美減肥類-미용과 비만해소), 강저혈당류(降低血糖類-혈당량 조절), 소식건위류(消食健胃類-소화와 위장 강화), 억균소염류(抑菌消炎類- 유해균 억제와 소염효과), 명목익사류(明目益思類- 시력과 사고력 증대), 영심안신류(寧心安神類- 정신 안정), 서간보간류(舒肝保肝類- 간기능 개선), 자음장양류(滋陰壯陽類- 보혈과 양기), 익수양신류(益壽養身類- 장수와 양신), 방암항암류(防癌抗癌類- 함암), 항복사류(抗輻射類- 항전자파), 성주해연류(醒酒解煙類- 술과 담배 해독) 등등 일부를 소개해도 이 정도입니다.
보건차(保健茶) 혹은 약차(藥茶)라 불리는 것은, 차를 주원료로 하되 여기에 기타 약초와 약재를 배합 법제(法製)한 것입니다. 특별히 보건양생에 편중된 음료를 말합니다. 현대사회 특징을 보건데 이 분야의 차 종류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국내 한 한의원에서 제조한 ‘반노환동차(返老還童茶)’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겠죠. 편중됐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관련해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약차나 보건차는 일정한 편향에 빠진 몸의 조정을 위해 필요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전제하고, 사용시기나 다른 음식물들과 조절하는 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차를 매개로 나를 이해하고 너를 이해하다
제품화된 차를 현실에서 하나하나 이해한다는 건, 벅찬 일입니다. 특히 화차나 약차처럼 전통적인 방법은 물론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블렌딩된 차들이 많아지면서 쉬운 상황은 더욱 아닙니다. 밖에 있는 많은 물건들을 만나는 기준은 내 몸에 있습니다. 차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굳이 차와 건강을 문화로 이야기하는 것도, 차를 선택하는 이유가 내 몸과 생활을 품격 있게 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차를 마실 때, 내 몸도 그렇지만, 함께 차 마시는 이의 몸을 함께 살피게 됩니다. 차를 누군가와 함께 마실 때, 차를 우려서 대접할 때, 상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차 우림에서 제일 순서이기도 합니다.
윈난 따리(大理)의 바이족(白族)에게는 ‘삼도차(三道茶)’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구성된 차를 가지고 손님들과 함께 맞이하며 마시는 나눔의 차문화입니다. 바이족은 손님이 오면 세 가지 종류의 차를 잇달아 내옵니다. 먼저 쓴맛의 차(苦茶)를 내오고, 다음으로 단맛의 차(甘味)를 내오죠. 마지막에 회미(回味)라고 하는 복잡미묘한 맛의 차를 내옵니다. 손님의 몸 상태에 맞추어 일정한 시간 순서에 따라 차를 냅니다. 차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먼 길을 온 이에게 쓴맛의 차는 몸을 수습하게 하고, 단맛의 차는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주며, 회미의 차는 모든 긴장과 이완이 하나로 돌아가도록 풀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따리 여행을 가면 매번 들리는 바이족 마을, 그곳에선 아직도 바이족의 삼도차(三道茶)를 마시고, 그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손님이 되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음식물을 비롯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일체 모든 것도 나에게는 손님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예의가 있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 같은 음식물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절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몸의 운행 시스템을 알면 알수록 차는 더욱 반가운 손님이 될 것입니다. 몸을 둘러싼 이해가 곧 차를 둘러싼 문화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