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내유보금 과세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경환 부총리 경제팀이 내수진작을 위해 사내유보금 과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업들의 사내유보율(이익잉여금/총자산)은 2001년 4.6%에서 2002년 11.9%로 급증한 후 현재 20%대에 올라 있다. 국내 10대그룹(금융사 제외)의 사내유보금은 지난해 6월 말 기준 477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면서 세수감소분만 28조원에 이른다며 기업의 투자·배당·임금인상을 적극 주장하는 반면 기업들은 기업 돈의 용처를 정부가 강제하는 게 근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한 찬반 주장을 게재한다.

● 찬성,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법인세 인하 혜택에도 낙수효과 미미

기업, 저성장 경제 구하는 데 앞장서야


새 경제팀이 '새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여부였다. 기업들이 사내유보를 너무 많이 쌓는 바람에 낙수효과가 실종돼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렸다는 인식에서 나온 이슈였다.

사내유보 과세는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이 문제는 2008년 법인세 감세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 당시 우리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침체에 접어들었고 재정형편도 매우 어려웠었다. 그런 와중에도 법인세를 깎아주면 그 돈으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려 경제를 살려 줄 거라는 믿음 하나 때문에 납세자들은 대규모 법인세 감세를 용인했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렀다. 법인세 감세에 따른 세수감소분은 지난해까지 5년간 28조원에 달했고 재정은 대규모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재정이 어려워지자 비과세·감면이 줄어들어 수많은 근로자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났다. 반면 투자도 고용도 임금도 경기 활성화도 기대했던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오직 사내유보와 대기업 계열사 숫자만 매년 엄청난 폭으로 증가했다. 기업 부문의 현금성 자산, 대기업의 정기예금도 천문학적 규모를 매년 갱신했다. 기업은 눈부시게 좋아졌지만 국민 경제는 나아지지 못했다.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서로 단절된 상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결과를 얻으려고 법인세 감세를 했던가. 줄어든 세금을 어떻게 처리하든 알아서 하도록 기업의 자유에 맡겨 놓았더니 정책효과는커녕 엉뚱한 일만 벌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해줄 납세자는 거의 없다고 본다. 당초 기대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법인세 감세를 보완할 때가 됐다.

가장 깨끗하고도 직접적인 방법은 내렸던 법인세를 다시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새 경제팀은 거기서 한걸음 물러서서 사내유보 얘기를 꺼냈다. 예상대로 재계는 즉각 반발했다.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익을 어떻게 처리하든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를 이끌어가야 할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경영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저성장에 빠진 경제를 무작정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재계가 반발하자 정부는 사내유보 과세에서 다시 한걸음 더 물러섰다. 투자·인건비·배당을 늘리는 기업에 세제혜택을 줘 사내유보를 쌓지 않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내유보'라는 단어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당근과 채찍 중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투자나 인건비, 배당을 충분히 늘리지 않는다면 과세(기업소득환류세제)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힘으로써 기업의 반응을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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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렇게 방향이 정해진 이상 아무쪼록 정부의 구상대로 사내유보로 쌓이던 자금이 투자·임금·배당을 통해 가계소득으로 흘러 들어가 빚을 지던 가계가 저축을 시작하고 저축에 몰두하던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는 경제 선순환이 가동됐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과도한 사내유보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점점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공은 이제 기업에 넘어갔다. 정부가 아무리 동분서주해도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경제는 살아나지 못한다.

● 반대,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배당금 증가, 소득 연계되기 어려워

규제 완화·투자 인센티브제 선행을


새 경제팀이 지난달 24일 발표한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점차 구체화돼가고 있다. '가계 소득 증대 3대 패키지' 중의 하나로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해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업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기업의 과다한 사내유보를 지적하며 이명박 정부 시절 25%에서 22%로 인하된 법인세 혜택에 비해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과세 제도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배경인 사내유보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00조~800조원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처음 들으면 기업들이 기업 내부에 정부 예산보다 많은 현금을 갖고 있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자금조달인 자본항목에서 잉여금을 뜻한다. 즉 기업 이익 중에서 세금과 배당을 통해 외부로 유출하고 남은 것으로 기업의 운용방법에 따라 현금·토지·건물·기계설비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투자를 많이 해도 유보금이 높을 수 있다. 외국의 입법례에서 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주주 배당소득을 부당하게 늦추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로 시행되고 있다. 이와 달리 기업소득환류세제는 기업소득의 가계이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유사한 사내유보금 과세이지만 세계 최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한 기대는 생각만큼 높지 않다. 먼저 배당금의 증가가 소득으로 연계되기 어렵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소유비중이 과반수를 넘기 때문에 개인 비율은 10~20% 남짓이고 그중에서도 대주주나 자본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가계이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 역시 대기업 종사자나 임원을 대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업의 이익 사용처와 운용 규모를 정하는 일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이번 과세안은 기업이 당기 순이익의 60~70%를 정해진 기간인 2~3년 내 사용해야 한다는 틀 안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특별히 투자 의사결정을 단기에 국한시키고 개별 기업이 가진 고유의 특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제도다.

최근 해외투자를 가계소득 이전 목표에 맞지 않기 때문에 기업 투자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정부 발표는 이러한 걱정을 더 키운다. 해외수익이 이미 국내수익을 넘어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기업이 해외활로 개척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될 수 있다.

사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내유보금 과세 논의는 새로운 주제가 아니다. 2011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지만 지금까지 현실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이론적 한계와 실효성을 입증할 만한 실증적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논의되는 것은 정부의 경기회복에 대한 절실함을 뜻한다. 그 절실함으로 기업의 투자활력을 되살리고 새로운 투자처를 개발하는 규제 완화와 투자 인센티브 제도가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부의 사내유보금 과세라는 인위적인 개입은 규제 완화 이후에도 늦지 않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과거의 경영을 돌아보고 사회와 함께하는 공유가치경영(CSV)을 보다 창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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