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문화 입은 벼룩시장 새 유통 트렌드 됐다

지난달 초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 7층 하늘정원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구경하며 고르고 있다. /사진제공=롯데백화점

지난달 30일 이태원 우사단길 ''계단장''을 찾은 사람들이 갖가지 판매 소품들을 구경하며 구매하고 있다.

홍대·이태원·황학동… 볼거리·먹거리 더해

'대안 놀이터'로 진화… 주말마다 발길 붐벼


유커엔 필수관광코스

유통기업, 콘셉트 차용… 알뜰족에 폭발적 호응



지난달 30일 오후 이태원 이슬람 사원 뒤 협소한 계단 한 켠에 아기자기한 수제 액세서리와 직접 만든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는 청년 장사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 골목을 찾은 행인은 셔터를 누르며 독특한 제품을 사진기에 담아가는가 하면 이색 쇼핑으로 얼굴에 웃음을 한 가득 머금고 있었다. 이 곳은 이태원 '계단장'이라 불리는 벼룩시장. 지난 2013년 우사단길에 정착한 젊은 예술인과 청년 사업가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 '우사단단'이 기획, 동네 슬럼화를 막기 위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마련한 장터다. 직접 만든 잼 등 먹거리나 액세서리, 책자, 엽서, 중고 의류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 그 주변에서는 소규모 공연도 열린다. 계단장에서 만난 소지영(32)씨는 "자유분방한 느낌이 좋아 놀이터처럼 자주 찾고 있다"며 "특히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충만한 이색 물건들이 많아 보고 물건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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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입은 벼룩시장이 신유통 트렌드로 떠올랐다. 단순히 중고 물품을 사고 파는 개념에서 나아가 청년 예술가·사업가의 개성 넘치는 수제품이 거래되고 각종 문화 공연 등 볼거리, 이색 먹거리 등이 더해져 '대안 놀이터'로 진화했다. 이 같은 벼룩시장 중 일부는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바링허우(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 등 젊은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 코스로까지 자리 잡으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홍익 어린이공원(홍대 놀이터) 앞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홍대 벼룩시장에는 중국인 관광객이 유난히 북적인다. 화장품 매장과 각종 카페가 즐비한 신촌·홍대·합정 길은 유커의 주 관광벨트다. 특히 젊음의 거리라 일컫는 홍대 중심가는 10∼30대 젊은 유커들의 관심이 쏠리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홍대 벼룩시장에서 만난 리우난(23)씨는 "앞서 한국 관광을 했던 친구 소개로 찾게 됐다"며 "홍대 벼룩시장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색 캐릭터 상품부터 창작 예술품들이 많아 어느 쇼핑지보다 흥미로운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부러 토요일 일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청계천 7가, 8가 사이에 자리 잡은 황학동 벼룩시장은 수집광들이 즐겨 찾는다. 최근에는 골동품 수집에 관심이 많거나, 구제 의류를 구매해 재가공(리폼)하려는 젊은 소비자들이 많이 늘었다는 게 인근 판매 상인의 귀띔이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만난 유성근(35)씨는 "중고라고 꺼려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며 "손 때 묻은 물건을 재구매해 다듬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꽤 재미있어 자주 들러 물건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콩나물밥 등 5,000원도 채 되지 않는 소박한 먹거리와 맛집들이 많은 것도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벼룩시장이 새로운 유통 채널로 주목받는 데는 트렌드 주기가 빠른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2030세대의 소비 행태도 한 몫 한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소비자들 묵직한 소유 내려놓고 가벼운 소비로'에 따르면 무조건 값비싼 상품을 소유하기 보다 가치 소비가 주를 이루면서 꼭 필요하다면 중고도 마다하지 않게 됐고, 최근 몇 년 동안 강남, 이태원, 홍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고 벼룩 시장이 각광 받는 것도 이런 트렌드의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다량의 공산품에 대한 피로감에서 벗어나 나만의 이색 창작품을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상행위 공간에서 벗어나 문화공연까지 더해진 '대안 놀이터' 개념이 접목된 게 벼룩시장 성행에 일조하기도 한다.

벼룩시장은 물건을 사는 이들 못지 않게 판매자에게도 유익한 공간이 된다. 이태원 계단장 일대 판매자 김경현(28)씨는 작은 문예지 등단 작가로 현재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글 쓰는 일과 종이출판물 판매를 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계단장은 이런 책, 이런 작가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주류 시장으로 옮겨가는 하나의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 대기업들도 일찌감치 벼룩시장 콘셉트를 차용 해 재미를 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3년부터 해마다 서울 본점 영플라자 야외 하늘정원에서 벼룩시장을 열고 있다. 올해도 약 35만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패션 커뮤니티 '패밀리 세일'과 연계하는 등 벼룩시장을 선보였다. 비교적 큰 돈을 들여 구매했지만 몇 번 입고 쓰지 않아 방치한 각종 의류, 신발을 저렴하게 내놓아 알뜰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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